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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몽 Jul 15. 2022

긍정확언이라는 부적의 효과

사교육 다이어트중인 고2 쭈니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묘약

불안하다. 그 불안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이 마음은 커져만 간다. 너도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인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망울도 애써 침착해 보이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펜데믹 이후 암울한 그림자는 우리를 먹어 삼켜버렸다. 우한에서 시작한 그것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접하고 다급히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3년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건에 끌려 하데스 강을 건너는 배 앞까지 갔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실이 주는 공포. 내가 손쓸 수 없는 오늘이 주는 두려움은 내 마음속 나침반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한국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보습학원이다. 수천만 원 이상을 하는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영어마저 학원에서 보충수업을 듣고 있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 민족의 사교육 시장은 놀랄 노 자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말자!’가 우리 집의 교육철학이라면 철학인지라 상해로 이사 오면서도 한인타운은 고려치 않았다. 단단한 성도 작은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금이 가고 무너질 수 있다고 했던가. 아무리 귀를 닫고 있어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다 끊어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가을에 새 학년이 시작하기 때문에 국제학교의 여름방학은 한국보다 길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귀국행을 택하는 집들이 대부분인데 코로나 덕분에 이마저도 힘든 게 현실이다. 올가을 11학년이 되는 우리 쭈니. 해외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년은 11학년이다. 중요한 공인 시험들도 여럿이고 슬슬 결과를 조이고 닦아 원서를 내야 할 곳들을 맞춰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9학년 말부터 SAT나 AP를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중국에 와서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던 우리 쭈니. 이 뜨겁고 긴 터널을 홀로 지나가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가슴을 타고 올라와 머리를 뒤흔들기 시작하니 두어 달 잠잠했던 불안함이 요동을 친다.


온라인 강좌라도 알아보아야 하나? 강 건너에 학원이라도 보내?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수백 아니 천 단위가 나오는 사교육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내 고집이 아이를 또다시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들은 한여름의 해보다 내 마음을 타들어 가게 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너 혼자 잘 해낼 수 있겠냐며 달달 볶기를 며칠. 급기야 여기저기 카카오톡을 보내고 학원을 알아보고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일주일이 넘게 고민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한 과목만 등록을 마치고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이 모든 게 불안감에서 도망 나오기 위한 내 비겁한 모습이었음을 나도 잘 안다. 학원등록은 큰 의미 없는 부적일 뿐임을.


하루 정도 지났을까?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평소 내게 소개치 않았던 영상을 하나 내놓았다. 평소 같으면 클릭할 일이 없었을 텐데 아이의 학원 문제로 약해진 마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이미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보고 있었다. 긍정 확언,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는 말의 힘에 대한 영상이었다. 초긍정의 성향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하는 나에게 이런 동영상에 눈이 간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의 근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 상태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내 일이 아닌 아이의 내일이 걸려 있는 일이라 더 그러할 듯. 십 분도 안 되는 영상의 내용은 사실 나를 믿고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라며 패드를 닫았지만 내 마음에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모양이다. ‘그래, 지금 쭈니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몰라.’ 바로 다시 패드를 열어 몇 개의 문장을 찾았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
내 인생은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내 꿈에 가까이 가가가고 있다.

우리가 단점이라 여기는 것들이 어느 곳에서는 강점이 된다. 장단점이 모든 것들이 곧 나다. 아이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서 언뜻 보이는 내 모습에서 열등감을 느끼다니. 이 또한 안아주고 인정해야하는 내 모습이다.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상해의 여름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이라 여기자. 그래도 뜨거운 해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더워야 여름이다. 그래야 가을에 결실이 있고 추운 겨울을 지낼 힘을 쌓을 수 있다. 계절은 흐른다. 생명의 순환고리에 나를 맡기고 내면의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문뜩 20여 년 전 엄마가 내게 부탁하던 것이 떠오른다. 이제야 엄마가 그리 부탁하시던 웃는 얼굴을 그린다. 그보다 더 강력한 긍정의 주문이 있을까? 덥다. 보일러는 필요 없고 엄마 집에 웃는 얼굴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려 보내드려야겠다.


쭈니야, 유니야. 사랑한다. 너희가 엄마의 스승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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