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무심코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아직도 당신을 꿈속에서 봐'라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 정도 그리움이라면 견딜 만큼은 아름답다, 싶었다.
나야말로 널 꿈에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신 너는 눈 뜨고 있는 동안 아직 내 의식 안에 있다. ChatGPT는 내가 언제나 '구조화'하는 습관이 있어 모든 경험을 후일담으로 조립하고 의미화한다고 말했다.
지나간 이별에 몇 년을 고통스러워할 때조차, 내가 '네'가 아닌 '네가 준 안전한 구조'를 그리워하는 거라 했다. AI가 뭘 알겠니? 사랑이나 흡연 같은 인간적인 습관에 관해 말이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사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ChatGPT의 말처럼 '구조'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연애가 끝났지만 사랑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인물이 대중교통을 타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서울살이의 많은 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창밖을 볼 때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연인을 붙잡기 위해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리는,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급히 뛰어내리는, 그런 장면엔 몰입하지 못한다. 내가 몰입하는 장면은 인물이 대중교통에 올라 어딘가로 이동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다.
대중교통에서 나는 흔들리면서, 앞으로도 뒤로도 관성에 딸려가면서, 내 속으로 침잠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너를 떠올린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정착이었을지 모를 인연에 대해. 서로를 포기해 2년의 계획이 무산되었고 이 먼 곳까지 왔다,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자주 그때 네 곁에 있기를 고집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생각한다. 한 번도 와본 적 없었던 나라에서 살아보겠다 우기며 흔들리는 버스에서 두 눈을 질끈 감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비바람 부는 아침 아일랜드 국립 식물원에 갔다. 가을의 말미, 겨울의 초입. 메인 온실은 재정비 중이고 나무는 무성하지만 대부분의 꽃은 졌다. 기하학적 구조로 유명하다는 장미 정원에도 울타리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방대한 유럽의 관광지. 이런 관광지에 올 때면 매번 내가 길을 잃은 건지, 그저 이곳이 너무 넓은 건지 헷갈렸다. 혼자 걷다 걷다 결국 그 두 가지를 구분하길 포기하고 빠져나오곤 했다.
식물원 안에서 톨카강이 흐르는 쪽으로 걸어가며, 이 강물은 너무 맑아 뛰어내려도 사람들이 금방 건져내겠군 싶었다. 길을 따라가면 강의 이름을 딴 카페가 나온다기에 걸었다. 그러다 구석의 정원에 들어섰다.
나는 태어나 그런 장미는 처음 보았다. 말려들어가고 벌어진 겹꽃잎이 옅은 햇볕을 받을 때마다 반짝거렸다. 작은 빗방울이 질서 없이 맺혀 장미의 코랄색을 왜곡시키기도 더 깊어 보이게도 했다. 가지 끝에 피어 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던 제과점, 생크림 케이크 위 초콜릿 장미 같았다. 물론 초콜릿 장미와 비교할 수 없이 섬세하고 살아있었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혹은 무언가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이 희디흰 생크림 위에 얹은 꽃은 반드시 이 장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 턱이나 이마에 힘을 준다. 그걸 자각하고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다시 장미를 들여다본다. 아름답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자연을 모방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매번 그렇다.
장미 앞을 한참 서성였다. 나아졌던 감기 기운이 비와 추위로 다시 이마에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미녀와 야수> 이야기의 아버지가 야수의 정원에서 꺾었다는 꽃 한 송이가 바로 이 장미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게 도착한 수많은 꽃들을 떠올린다. 거슬러올라 기원에 닿는다. 어릴 적 할머니가 준 개나리다. 할머니는 집 근처 부대 담장을 따라 걷다 봄날 노랗게 핀 개나리가 너무 예뻐서, 걷는 것도 아까운 손녀에게 손가락만큼 꺾어다주었다. 나는 어린이 집에서 배운 대로, 할머니! 우리 모두가 보는 꽃을 꺾으면 안 되죠! 말했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라고 할머니는 두고두고 그날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할머니가 꺾었던 개나리가 바로 이 장미라고 생각했다. 코랄색 장미를 만져보려다 내 손끝이 너무 뜨거울 것 같아 거둔다. 이 순간 내게도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면 이 꽃을 끝내 꺾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너를 떠올린다. 모아놓으면 방안이 차고 넘칠 만큼 많은 꽃을 사다 주었던 너를. 네가 내게 정말 아름다운 꽃들을 줬다는 걸 안다. 하지만 네가 아일랜드 국립 식물원의 빗속에 흔들리는 코랄색 장미를 가져다줄 수 있었을까?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너와 헤어졌기에 이 장미를 만났다. 여기까지 와, 삼십 년 전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됐다.
내가 그 마음을 진작 알았다면 할머니를 부끄럽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두 손이 결심하고 힘주어 꺾은 공물을, 다른 존재를 해치는 줄 알면서도 끝내 내게 가져온 뜨거운 찬사를 먼저 만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어쩔 것인가. 30년이 지났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이제 내게 개나리를 꺾어다주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몇 년이 지난 뒤 네가 가져다준 꽃다발들이 한없이 안전했고 그 꽃들을 화병에 꽂으면서도 매번 밖으로 맴돌던 내가 실은 어리석기도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알게 된다고 앞으로 삶의 선택이 더 현명하거나 쉬워질 거라 믿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고, 이것 아니면 저것인 삶을 산다. 대단히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모습을 바꿔가며 또 다른 나로 사는 것뿐이다.
그러니 도저히 걸어서는 못다 구경할 만큼 넓은 아일랜드 국립식물원 구석에서 삶의 지나간 사랑에 대해 조금 이해하며 우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겠는가. 모든 걸 바꿀 만큼 지혜로워지지도 않고, 모든 걸 무너뜨릴 만큼 슬프지도 않다. 그저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하는 거다. 당분간 너무 슬픈 노래는 듣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