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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솜 Sep 09. 2024

긴 터널 끝에 마주한 빛

우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살면서 크나큰 일은 딱히 없었지만 우울증을 전후로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친구와 만나는 사소한 결정 하나 시원하게 내리기가 어려웠으며 방해금지모드를 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자꾸만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자니 홀로 시간이 멈추어 있는 기분이었다. 수시로 무기력했고, 단순한 행동을 하는 것에도 큰 의지가 필요했다. 그런 기분이 적게는 2주 이상 지속되었다.


 10대 때 사춘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25살이 넘어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나의 존재를 쫓는 질문과 같은 철학적인 생각을 해본 것이다. 더군다나 생각이 조급하고 부정적인 편이라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내게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그때 조금 더 감정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마주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본다. 


 

 감정의 혼란 속에서 세상에 벽을 치고 숨어버리는 것이 결코 내 생각과는 다르게 해결책이 못되었다. 이런 말이 있더라, '자신의 목소리에 솔직하지 못한 형벌로 후회라는 벌을 받는다'. 나아갈 용기를 내보기도 전에 잘못된 길을 계속 가고 있던 나는 그 끝내 후회를 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결과는 나를 지치게 했고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글 쓰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어딘가 풀어낼 데가 필요했고, 그게 글 쓰는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담과 같은 것을 노트에 끄적이는 것이 효과가 좋았다. 이 기나긴 우울증도 어딘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점차 나의 꿈,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며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나의 감정을 돌보는 일에도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내면을 가꿔나갈 수 있는 힘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는 첫걸음이었달까. 그 덕에 믿게 된 말이 있다. '불행이 있으면 더 좋은 날이 찾아오려고 하는 것이다.' 



 긴 터널에서 나오고 나서 마주한 빛은 이 세상에 어떤 빛보다 밝고 희망찼다. 놀라웠던 것이, 전에는 없던 흥미와 호기심 같은 감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어떤 날, 이런 기록을 했는데. '신기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되찾았다'. 신기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에서 비롯되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해마가 쪼그라들어 호기심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되찾은 호기심이 순간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소중한 감정을 잃어버릴 정도로 얼마나 스스로를 가뒀던 것일까......



 그 시간 속에서 얻은 소중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나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의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이 조급해져 들여다보기가 어렵지만, 노력하다 보니 차분하게 보내는 시간도 생겼다. 참 모순적이게도 그때만큼 삶을 열심히 돌아보았던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때 마주한 빛이 여전히 삶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다시 살아갈 원동력이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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