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 궁금해> #1. 프리랜서 번역가 번역 시장 입문기
안녕하세요.
번역하는 엄마입니다.
오늘부터는 <번역가 에세이: 번역이 궁금해>를 연재합니다.
초짜 번역가 시절부터의 좌충우돌 경험담을 낱낱이 공개해볼게요!
오늘은 그 첫 번째 시리즈, 프리랜서 번역가 번역 시장 입문기, '너 어디까지 팔아봤니?'입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
오늘 제목이 '너, 어디까지 팔아봤니?'인데요,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요? 감이 잘 안 잡히시죠? 바로 접니다, 번역가 본인이죠. 번역 시장에서는 번역가도 하나의 상품이거든요. 출판사가, 에이전시가 나를 뽑아줘야 비로소 내가 팔리고 번역을 하고 돈도 벌 수 있습니다. 역으로 내가 팔리지 않으면, 아무도 날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번역을 할 수가 없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번역가도 분명한 상품입니다.
그렇다면 초보 번역가 시절의 저는 저를 어떻게 팔았을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애초에 대학원에 진학한 목적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이었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기업이나 정부기관에 취직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동기들이 취업원서를 쓰기 시작하자 저는 불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아무리 통대를 나왔어도 번역가로서 일을 해 본 경험은 거의 없었기에 일감을 어떻게 구하는지조차 몰랐거든요.
그래서 저는 곰곰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나를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나를 팔아야 할까? 이후 저를 잘 포장해서, 즉 국문과 영문 이력서를 철저히 준비해 저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학교 취업게시판을 공략했어요.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당시 대학원 게시판에는 각종 통번역 인력을 구하는 게시판이 따로 있었거든요. 일단 그곳에 인력 구인 글을 올린 회사명과 담당자 연락처를 모두 적어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수요가 없어도 일단 통번역 인력이 필요했던 전력이 있으므로 언젠가 또 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담당자 연락처로 제 소개와 함께 언제든 일거리가 생기면 연락을 주십사 부탁하는 이른바 '상품 소개' 메일을 보냈습니다. 20군데 이상 보낸 것 같은데 제 기억으론 답장은 거의 못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하나도 지치지가 않았어요. 나 자신을 알리려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이 스스로 참 대견했거든요!
다음으로는 페이스북에 있는 동문 페이지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사실 알짜배기 정보는 학교 취업게시판보다 이곳에 많이 올라오거든요. 요즘은 코로나로 구인 정보가 뜸하긴 한데 일단 올라오면 거의 빛의 속도로 마감되곤 합니다. 그래서 새 글 알람을 켜두고 저 역시 빛의 속도로 확인한 후 제가 할만한 일거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했어요. 이곳에서는 꽤 성과가 있었답니다. 3년째 하고 있는 외신 번역 일도 여기서 소개받았고요.
이렇듯 학교 게시판과 동문 페이지를 통해서는 양질의 일감을 구하는 데 주력했어요. 여기서 '양질'의 대상은 단적으로 고객사의 퀄리티와 단가인데요, 학교 게시판의 경우 통번역대학원 재학, 또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인력을 구하는 경우이므로 주로 대기업 고객사가 많고 단가도 높은 편이더라고요. 동문 페이지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단가 개념이 전혀 없는 고객사도 종종 있습니다만, 번역 시장 전체로 놓고 보면 대체로 그런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질의 일감이 늘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죠?! 그래서 저는 단가는 좀 낮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감도 필요했어요. 무슨 베짱인지 지금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책 번역의 경우 일단 제가 에이전시와 거래를 시작해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하면 그 뒤로는 비교적 수월하게 일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다행히 제 예상은 맞았고요. 그래서 출판사와 번역가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 문을 두드렸답니다.
당시 3~4군데 에이전시에 이력서를 냈는데 거의 다 연락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신출내기 번역가다 보니 아무래도 규모 면에서 큰 회사가 믿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규모와 신뢰도를 기준으로 에이전시를 선택했고, 그곳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팁! 보통 번역가와 에이전시는 이메일, 우편 거래가 대부분이어서 서로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저는 첫 계약서를 쓸 때 음료수 들고 담당 팀장님을 찾아갔답니다. 잘 되면 앞으로 죽 제게 일감을 제공해 주실 수도 있는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그때 팀장님 왈, 윤영 씨 같은 번역가는 처음이라고! 번역가는 아무래도 혼자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사교적이지 않은 분들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 같은 별종을 만나셨으니 좀 신선하셨던 것 같아요. 하하.
그때의 작은 노력 덕분인지 지금 그 팀장님과 6년째 일하고 있는데요, 일할 때마다 항상 제 편의를 제일 우선적으로 봐주세요. 애들 데리고 일하느라 고생한다시며 마감도 최대한 길게 잡아 주시고, 일감도 제가 그간 쌓아온 이력에 맞게 적절한 주제로 골라서 제안해 주시고요. 둘째 낳고 일반 서적은 도저히 번역할 엄두가 안 날 때도 텍스트가 적은 아동서만 골라 연결해 주셔서 긴 공백 없이 일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다른 에이전시와도 일을 하게 돼서 예전만큼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그 팀장님은 늘 감사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자, 이렇게 제가 시장에 갓 진입한 신출내기 번역가로서 나를 어떻게, 어디에 팔았는지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렸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파는 그 행위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더라고요. 물론 실력이 첫째 조건이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번역가와 고객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인 것 같아요.
신뢰는 서로의 관계가 오래될수록 깊어지지만, 거래를 처음 트는 상황에서는 나에 대한 신뢰를 증명할 길이 없거든요. 그렇다면 최대한 나를 잘 포장해서, 그러나 진심을 담아 나를 파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첫 단추에서는 신뢰에 대한 가능성만 어필할 수 있다면 기회는 비교적 쉽게 오는 것 같아요.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건 번역사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포스팅이 번역 시장에 입문하려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 모두 파이팅!
해] #1. 프리랜서 번역가 번역 시장 입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