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하나를 만들어주었던 편집자께서 출판사 퇴사를 앞두고 있다. 어제는 퇴사 인사와 후임 담당자를 알려주는 메일이 도착하였다. 이제 출판사 계정으로 담당 편집자님에게 메일이 올 일이 더는 없는 거겠지.
지금껏 출간한 다섯 종의 책 중에서 세 종을 투고로 내었는데, 그 투고 원고를 채택해 준 편집자 분들이 모두 출판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한분은 1인 출판사로 독립하여 여전히 책을 만들고 계시고, 이번에 퇴사하시는 분은 어떠시려나. 잠시 쉬었다가, 다시 책의 세계로 돌아오시려는 건지, 어쩌면 책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생활을 하게 되실런지.
투고를 해서 책을 낼 때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이 편집자는 분명 내 글을 좋아해 준다, 하는 그 믿음에 있다. 많고 많을 투고 더미에서 책이 될 만한 원고를 하나 찾아내는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테니까. 원고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나를 담당해 주었던 모든 편집자들이 나에겐 각별하지만, 이번에 퇴사하시는 편집자님에겐 유독 그런 마음이 든다. 처음 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그는 원고를 재미있게 읽었다며, 한 달에 한 번 하는 기획회의 후에 출간 가부에 대해 답을 주겠다고 했다. 시간은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고, 나는 기다리겠노라고 답을 했다.
기다리던 메일은 2주가 아닌 바로 다음날에 왔다. 기획회의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무 늦어질 것 같다고, 회의 전에 마케팅팀과 간략하게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케팅팀으로부터 추진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어쩌면 이 사람은 내 글을 좋아해 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피어나는 순간.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편집자님과의 미팅이 이루어졌다. 약속 장소는 출판사 건물 1층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편집자님은 앞서 내가 냈던 책에 인덱스를 가득 붙이시고는 나타나셨다.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셨다고.
출판사에서는 이미 앞서 계약되었던 원고들이 있었기에 바로 책이 되진 못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 편집자님은,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며 책을 잘 만들어보자고 말해주었다.
편집자님과 책을 만드는 과정은 대체로 즐거웠다. 나는 겨우 세 번째 책이었지만, 편집자님은 이미 이쪽 세계에서 20년 가까이 몸을 담으며 100종이 넘는 책을 만들고 계셨으니까. 초짜 저자는 그렇게 베테랑 편집자에게 기대어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편집자님과 교정을 보면서 어떤 표지를 구상하실지 궁금해졌다. 편집자님과 함께 만든 책은 시리즈물이었는데 그전까지는 모두 국내 작가의 일러스트를 표지로 사용했다. 나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했는데, 편집자님은 국내 일러스트가 아닌 국외 작가의 그림을 사용하고 싶다며 샘플을 보여주었다. 그중엔 특히나 책과 잘 어울릴 듯한 그림 하나가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있는 소년과 거북이, 책탑과 보름달이 그려진 그림. 편집자님은 독일 작가 크빈트 부흐홀츠의 작품이라고 했다. 편집자님은 크빈트 부흐홀츠의 사이트 링크를 보내주며, 다른 그림들도 살펴보라고 했지만, 편집자님도 나도 샘플로 집었던 그 그림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고, 결국 그 그림은 책의 얼굴이 되었다.
출간 후에도 편집자님과의 소통은 이어졌다. 출간 후에 몇몇 유튜브 촬영이 있었는데 어느 방송에서는 편집자님이 직접 출연까지 해주기도 하셨다. 그때 편집자님이 함께 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유튜브 촬영을 마치고는 함께 식사를 하고, 한강 공원을 걷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촬영을 마친 날 당분간 얼굴 볼 기회가 없을 거라고 느낀 나는 편집자님에게, '저 한 번만 안아주세요.' 하고 제멋대로 안기기도 했다. 그 포옹 안에, 편집자님과 나 사이에, 드러내지 못하는 사연들이 있다.
앞서 내 책을 만들어주었던 담당 편집자가 출판사를 퇴사하고, 그 후임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올 때가 있다. 보통은 인세와 관련된 메일인데 그럴 때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내 담당 편집자가 아니잖아. 그 많은 원고 더미에서 내 글을 세상 밖으로 보내주었던 그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 서먹함에 뭐라고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편집자님이 퇴사하시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면 그때 나는 또 그런 예의 서먹함을 느끼게 될까. 분명 내 글을 좋아해 주었던 '담당'이 이제는 이 출판사에 없다는 그런 서글픔을 다시금 느끼게 될까.
편집자님과 처음 카페에서 미팅을 할 때 나는 '내 책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퇴사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과하고도 지나친 부탁이었다. 출판사 편집자들의 이직률이 높다는 사실에 혹시 모를 퇴사를 걱정하며 내뱉은 말이었다. 편집자님은 약속을 지켜주셨고, 내 책을 만들어주었다.
내 원고를 세상 밖으로 보내주었던 사람.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었던 사람.
내 책의 '담당'이 되어주었던 사람.
그런 편집자님이 이제 출판사를 떠난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