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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14. 2024

그 사람은 내 귀가 잘생겼다고 했었다


2021년 책을 내고 홍보차 한 팟캐스트 방송에 나간 적이 있다. 홍대입구역 근처 스튜디오에서 남성 두 분과 여성 한 분, 모두 세 분이서 진행하는 방송이었다. 방송은 나름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고, 잠시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어떤 맥락으로 나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옆에 앉아있던 여성 진행자분께서 내 귀를 바라보며, "귀가 잘생기셨는데?" 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그 칭찬의 말을 듣고서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마이크에 뿜을뻔했는데, 살면서 귀가 잘생겼다는 칭찬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얼굴에서 잘생긴 구석이 얼마나 없었으면 귀를 칭찬하셨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잘생긴 귀라는 건 뭘까. 나는 잘생긴 귀라고 하면 삼국지(연의든 정사든)에 나오는 유비 현덕의 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귓불이 길어서 마치 부처님 귀 같았다지. 눈을 흘기면 자신의 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렇게 개성 넘치는 귀를 가진 탓에 적군에게는 '귀 큰 놈'으로 불리기도 했다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잘 생긴 귀라고 하면 부처님처럼 길고 넉넉한 귄데, 내 귀가 그러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도 2021년 팟캐스트 방송 이후로 샤워 따위를 하다가 거울로 내 귀를 보게 될 때면 예의 그 칭찬이 떠오르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달고 살던 귀였는데 뜻밖의 칭찬 한마디에 나름의 의미가 생긴 것이다. "귀가 잘생기셨는데?" 아, 어쩌면 내 귀는 조금 잘생긴 것일지도 몰라.


2021년부터 몸이 좀 안 좋아지면서 병원신세를 자주 졌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서, 한 의사 선생님과 한 달에 한두 번씩 만나면서 병치료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이런저런 합병증이 따라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가에 갔다가 소파에 앉아서 오른쪽 귀를 만지는데 눈에 띄게 부은 귀에서 덩어리가 만져졌다. 덩어리는 마치 물풍선의 느낌으로 누르면 꾹꾹 들어가기도 했다. 예로부터 이런 게 생기면 만지지 말아야 빨리 낫는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귀를 만지니 뜨근하니 열감이 있기도 하고, 꾹꾹 누르면 눌리는 게 신경이 쓰여서였는지 나는 그 후로 종일 귀를 만져댔다. 귀가 점점 부풀어 오르면서 분명하게 경계를 드러내던 귀의 연골은 마치 하나의 덩어리가 된 것처럼 경계가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딱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서 바로 병원에 가보지는 않았다. 며칠만 있으면 치료를 위해 의사 선생님을 만나니까, 그때 한번 물어보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며칠간 부어오른 귀를 가지고서 의사 선생님을 뵙고는 귀를 보여드렸다.


"선생님, 제가 며칠 전부터 귀가 이렇게 부었는데요."


"아, 그렇네요. 귀가 많이 부으셨네요. 이거는 외이도염 같은데요? 혹시 이어폰으로 음악 많이 들으세요? 이비인후과 한번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음악 많이 듣고 하시면 생길 수 있으니까 너무 크게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그 길로 인터넷에 '외이도염'을 찾아봤다. 수영장에서 물이 차서 생길 수도 있는 병이라고. 그러고 보니 외이도염이라는 병명은 나도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 있었던 거 같다. 흔한 병이겠네. 별거 아니겠구나. 그래 뭐, 이어폰으로 음악 듣는 거야 매일 하는 일이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또 며칠을 버티다가 드디어 이비인후과에 들러보았다. (나는 미루기 대마왕인데, 병원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일흔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백미를 가진 노의사였다. 나는 이상하게 연세 많은 의사 선생님에게 맹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는 터라, 선생님에게 편하게 이야기를 드렸다.


"선생님, 제가 귀가 지금 이런데요. 제가 며칠 전 다른 과 선생님한테 여쭤보니까 외이도염을 얘기하시던데 맞나요?"


그러자 노의사는 나무라듯이 이야기하셨다.


"외이도염은 무슨 외이도염. 이거는 외이도염이 아니에요. 지금 환자분 귀가 물컹물컹하니 뭐가 만져지잖아. 이게 다 피야 피. 피가 흘러서 귀 안에 고여 있는 거라고. 이거는 '이개혈종'이라는 거예요."


"네? 외이도염이 아니라 이개혈종이라고요?"


"아, 그래, 외이도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왜 레슬링이라나 유도처럼 거친 운동하는 사람들 만두귀 되는 거 있죠? 이게 그거야. 환자분 보니까 그렇게 거친 운동 하는 분은 아닌 거 같고, 당장 원인은 알 수 없는데, 바늘로 찔러서 피를 뽑고, 주사 맞아야 해요."


이개혈종이라고 하니 뭔가 욕같이 들리기도 하고 어감만 놓고 보면 확실히 외이도염보다는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티비에 나오는 격투기 선수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만두귀. 그 만두귀의 현상이 내 귀 오른쪽에도 생긴 것이다. 격투기 선수들은 수년간 훈련을 해야 생기는 만두귀 현상이 나는 가만히 있다가 생겼으니 당최 무슨 일일까. 만두귀를 가진 사람과는 길에서 시비가 붙더라도 절대 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귀라는 거 어차피 오른쪽 왼쪽 양쪽에 하나씩 붙어 있는데 한쪽은 만두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하는 철없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의사 선생님 이야기로 이개혈종에 가장 좋은 것은 스테로이드 주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 나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질 못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에게 지금 다른 과에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기에는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으니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보이셨다. 결국 그날 나는 바늘로 귀를 찔러 피를 뽑고, 간단한 몇 가지 약만 처방받았다. 선생님은 스테로이드를 맞지 않았으니 금방 재발할 수 있다고 하셨고, 귀의 모양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이개혈종을 앓은 지 1년 정도 되었을까. 처음 귀가 부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오른쪽 귀와 왼쪽 귀의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왼쪽 귀는 멀쩡한데, 오른쪽 귀는 빚다만 만두처럼 살짝 접혀 보인달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는 이상 타인이 보기에 그 차이를 알아차리긴 쉽지 않겠지만.


얼마 전 티비를 보는데 한 뮤지션이 말하길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의 뜻이 참 좋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언가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 그런데 그런 내면의 힘이 아닌 외모가 무너졌을 때, 내가 알던 과거 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회복 능력 자체가 제로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다시는 예전의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신체들이 하나둘 늘어나겠지. 머리칼이 가늘어지고, 눈썹 숱이 줄어들고, 코털이 삐져나오고, 잇몸이 약해지고, 치아가 빠지고. 운이 좋으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다시는 건강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을 갖게 된다는 것. 점점 약해지고 못생겨지는 것. 가끔 샤워를 하다가 왼쪽 귀와 오른쪽 귀를 번갈아 보곤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듯한, 변해버린 오른쪽 귀를 매만지며.


그 사람은 내 귀가 잘생겼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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