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정의 내리듯 '춤'이라고 하면 흥겹고 신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춤'과 서글픈 모습들이 더해지면 뭔가 독특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 듯하다. 이런 걸 두고 '역설의 매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으려나. 당장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배우 김혜자가 추던 춤이 떠오르고,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에 나오는, 슬픈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는 내용이 떠오른다. 래퍼 이센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이방인]에 실린 <Dance> 역시 비슷한 감흥을 안겨주고.
그리고 여기, 지금 당장에는 서툴러도,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고 노래하는 뮤지션이 있다. 가사 어디에도 '청춘'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청춘'이라는 단어가 환시처럼 보이고,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청춘가 중 하나. 바로 뮤지션 김뜻돌의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이다.
내 인생은 너무 서툴고, 다른 이들과 달리 나만 제 자리인 것 같은 느낌. 살면서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서글픈 감정이 아닐까.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거의 매일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요즘에는 더욱이.
또한 서툰 말투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 능수능란한 이의 능력을 빌려 말하고 싶다는 가사는, 눌변가인 내가 지금까지도 가끔 떠올리는 상상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능수능란한 말하기의 능력자는 누가 있을까. 사상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미국의 보수 언론인 벤 샤피로(Ben Shapiro)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의 말하기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말하면서도 발음과 논리가 좋을 수 있을까 싶다. 가끔 벤 샤피로가 내뱉는 말에 비트만 깔아주어도 훌륭한 랩곡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웬만한 토론 자리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그의 말재주를 보고 있으면 절로 촌철살인이라는 성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름 프로 작가(어쨌든 돈을 받고, 책을 파니까)가 되었음에도, 말 잘하는 능력과 글 잘 쓰는 능력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부족하다고 느껴온 말하기의 능력이 더 탐난다. 누군가는 말하듯이 쓰는 글이 좋다고도 했지만, 내가 하는 말처럼 글을 쓴다면 그때는 온통 끔찍한 비문투성이에 중언부언하고 말겠지.어설퍼, 정말이지 너무 어설퍼.
김뜻돌의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런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나의 부족한 모습을 설명하기보다는 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곡에 등장하는 '비'는 어쩌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삶의 역경 같은 것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당장에는 서툴다 하여도, 앞으로 얼마나 더 괜찮은 사람이 될지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기에 역경을 맞으면서도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거겠지. 그야말로 어설픔과 가능성이라는 '청춘'의 양면이 드러나는 곡이다.
악기 구성은 단출하지만, 시종일관 청량감을 안겨주는 기타 사운드도 훌륭하고, 가끔 비음이 섞인 듯하면서도 적절하게 리버브가 걸린 김뜻돌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한편으로 이 곡을 들으면 자연스레 나는 비가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춰본 적이 있었던가 떠올리게 된다. 흘러간 옛 가요의 노랫말처럼 젊은 날엔 그게 젊음인 줄 모르고 살았던 거 같으니까. 그래도 분명 내리는 비에 굴하지 않고 흠뻑 젖어들었던 날도 나에게는 있었을 텐데.
이제는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까 봐서, 머리카락이 빠질까 봐서, 조심하고 움츠리는 나이가 된 것 같아 몹시 서글프다. 이제 지나간 청춘의 느낌은 그저 이렇게 신나게 노래하는 다음 세대의 청춘가로 대리만족하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