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딩크부부의 텃밭일기
여름엔 러브버그가 쌍쌍이 기승을 부렸다. (번식력이 곱절이지만 익충이라고 했으니 이익도 두 배 려나(?)) 환경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건강한 식재료들을 먹을 수 있는 건 생태계의 섭리가 잘 돌아가고 있고, 자식 농사하듯 정성껏 수 일 간 작물을 돌보는 농부들, 양심껏 알알이 낙과를 선별하는 이들, 무더위에도 신선도를 유지해 주는 유통시설과, 기준을 세우고 가격을 책정하는 판매자 등 과정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뜨거운 여름 열심히 물 길어 키운 95호 텃밭 상추의 폭풍 성장으로 매 끼니 상추겉절이와, 쌈을 먹게 되었다. 나날이 위로, 옆으로 자라나는 열무 부캐(?)가 감당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고 유통을 해야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접 키우고 땄으니 만족도 100%, 신뢰도 100% 최상품이란 자부심으로 말이다. 과연 이 과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까...?
텃밭 95호의 유통원칙
유통을 하려 어디에, 누구에게 나눠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남편 조언은 그랬다. ‘음식은 사고도 많고 되려 인과 관계를 따지지 못하는 부분에서 해코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모르는 이들에게는 나눔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래, 호의를 의심 않고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건 이웃집 담벼락 넘어 고봉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던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마흔 전 후 나이지만 넉살레벨이 제로에 가깝다. 신혼집 거주지를 중심으로 지역기반 커뮤니티나 왕래하는 이웃도 거의 없는 부부다. 나눌곳이 없는 탓에 갈수록 풍성하게 열리는 상추&열무 부케는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무한궤도가 따로 없네, 이걸 다 어쩐단 말인가..)
첫 번째 교환물품, 견과류 바와 덕담 세트
우리 95호 텃밭은 산행로 초입에 있다. 그런 덕에 젊은 부부가 보기 좋다며 등산가시는 어머님 아버님 응원을 받아 보기도 했다.
평소처럼 물을 길어 올리던 여름날, 본인 체구만큼 작은 배낭을 멘 어머님이 한 두 마디 건네시길래 와서 열무나 상추 좀 따가시련지 여쭈었다.
"그래도 되겠어요? 지금 따다 먹기 좋을 때인데"
하며 반가워하시기에 텃밭 울타리를 열어드렸고, 찬찬히 한 끼니 쌈을 뜯어 챙기셨다. 상추를 죄다 뜯어 전멸을 시켜도 서운치 않았을 텐데, 어머님 댁도 식구가 적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상추는 뒷전으로 하고 두런두런 본격 수다 판을 벌이고 보니 둘째 아들 낳으신 나이가 서른일곱, 지금 딱 내 나이. 내게 늦지 않게 아이를 가지라며 본인께서는 노산이라 아이를 많이 못 돌봐줬다는 얘길 하셨다.
생각해 보니 신혼 때부터 딩크선언을 해두어서 인지 그동안 시어른들은 별말씀이 없으셨다. 또, 취업 지원한 회사의 면접관들이 아니고서야 구체적인 아기계획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가임기 여성이 기업의 조직원이 되려면 으레 껏 받는 질문이면서도 취업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기에, 결혼했냐는 질문엔 늘 '결혼한 지 오래되었고, 딩크입니다'라고 연이어 나올 질문도 잘라버렸던 나다.
어느새 질문과 답의 무게가 무거워졌고, 이대로 괜찮을까 되묻는 딩크 7년 차 지점이었다. 늦은 나이에 둘째를 낳아 많이 안아주지 못하셨다며 서두르라는 덕담은 더 이상 귓등으로 흘려버릴 이야기가 아니었다. 생명으로서의 본분은 "사멸하지 않고 보전되려는 것"이란 비밀도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욱이. (이전 편 참고)
받아만 가기 아쉬우셨는지, 매고 온 등산 가방을 뒤적여 본인 저혈당 대비용으로 챙겼다는 견과류 바를 나눠 주셨다. 여러 개 챙기셨길래 마다하지 않고 하나 받아왔는데... 초코 묻은 속세의 꿀 맛이었다. 취준생일 때엔 '딩크입니다' 답하면, '출근하세요'와 같은 포상이 있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온전히 내 인생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엔 '고민 중이에요'하니 초코견과류 바 같은 알 수 없는 달달한 마음이 두둑이 채워졌다.
잎이 푸른 청년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 모두의 관심밖의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누구도 조언하지 않는다. 길 가던 인연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따듯한 관심과 경험을 나눠 받아 감사할 따름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첫 번째 물물교환은 성공적이었고, 다음 물물교환은 밭의 절반을 비워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 다음 편에 계속-
<상추잎 따는 방법>
<도시텃밭 일지 2>
1. 상추는 종류도 모양도 가지가지 다양하다.
(적생채, 오크상추, 로메인상추, 치마상추 등등)
2. 상추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의외로 많다.
메인반찬으로는 부족하지만, 식탁의 생기를 더해준다.
3. 상추는 잎이 시작되는 흰 줄기를 깨끗하게 뜯어내어야 남은 잎으로 갈 영양분이 소실되는 걸 막을 수 있다.
4. 상추는 겉잎부터 먹기 시작해, 중앙부의 작은 잎들이 자라나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