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지금 각자의 양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것,
절대 놓아서는 안될 것 같은 그 무엇의 정체에 대하여.
혹은, 나처럼 내가 뭘 쥐고 있었더라?
주먹을 쥐고 있단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습관처럼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지켜내며
그저 그렇게 또 하루를 묵묵하게 살아내고 있을까.
어떤 게 맞는 걸까.
정답이 있긴 할까?
누군가는 그걸 쥐고 있어야지만 살 수 있고
누군가는 그걸 놓아야지만 살 수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후자에 속했다.
쥐고 있는 걸 놓아야지만 살 수 있었다.
놓아버릴때 놓아버리더라도,
대체 내가 뭘 쥐고 있었는지부터 제대로 들여다봐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지금까지는 내 손에 들린 게 뭐인지
세세하게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져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하고서야
거의 반강제로 꽉 쥔 주먹을 겨우 펼쳐 볼 수 있었다.
그 안엔 대충 뭐 이런 것들이 있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체면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
잘 나가는 회사 이름
공백 없이 완벽한 커리어
시간이 가면 오르는 연봉
꽉 쥔 손을 펼쳐내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온갖 짐을 혼자 다 갖다 싸매고 끙끙대던 지난날이 무색해졌다.
이렇게 훅 놓아버릴 수 있는 거였다면
그냥 스스로를 조금 덜 괴롭힐걸 싶어서.
그 모든 걸 내려놓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내려놓았다기보다는 그저 툭,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서
훅, 놓아져 버렸다.
훅 놓고 나니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그저 허무함 뿐이었다.
‘그게 뭐?, 그래서 뭐?‘
체면이라는 건 실존하는 건가?
언제까지 자랑스럽기만 해야 해?
회사가 잘 나가지 내가 잘 나가나?
공백이 있으면 완벽하지 않다고 누가 그래?
그럼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어?
답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문제들을
하나씩 정면으로 마주하자
어려운 답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작 이거였다고?’
내가 스스로를 잃어가며 지키려고 했던 게
결국은 다 허상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찾아온 허무함, 그리고 곧이어 따라온 후련함.
참 쉬웠다.
한 번에 다 놓아버리는 건 조금씩 천천히 놓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다고 믿어왔던
그 허상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내 인생에 원래 없던 것인 양 지워버렸다.
그렇게 텅 비워낸 마음으로 살기 시작한 지
서 네 달 정도 되었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익숙한 에너지가 아주 천천히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끝도 없이 바닥을 치는 중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바닥이 모양을 드러낸 듯했다.
그리고 돌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그냥 개업하지 뭐”
사람도 싫고 일도 다 싫다던 내 입에서
개업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남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안심이었다.
개업을 하겠다는 것에 안심을 한 게 아니라,
내가 다시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안심을 했던 것이다.
막상 바닥을 찍고 나니
생각보다 의욕은 빠르게 되돌아왔다.
다 버리고 나니,
무서울 게 없었다.
애초부터 0이라 생각하니,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잃으면 죽는 줄 알았던 것들을
다 놓아버려도 별일 없었는데,
잃을 것 하나 없는데
별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0의 상태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