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숨 고르기 (식물 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딱 그만큼의 힘을 얻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나의 집으로 초록이들을 들이는 일이었다.
내 마음처럼 유난히 춥고 삭막하게 느껴졌던 지난겨울.
주위엔 앙상하게 메마른 나뭇가지들 뿐이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소나무는 나의 초록 갈증을 채워주기에는 모자랐다.
그저 '끌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도저히 집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던 나날들.
사람들을 대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던 나는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식물들은 나의 '멈춤'의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하나, 둘 끌리는 대로 식물들을 집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거실은 작은 온실이 되어 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곳 초록이를 놓았다.
처음엔 몰랐다.
이 작은 생명들의 힘을.
식물들이 내게 어떤 것들을 가져다줄지,
그리고 식물은 단순히 집을 생기 있어 보이게 꾸미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겨울철 대부분의 식물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가끔은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죽은 건 아니겠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조금의 변화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식물들을 들여보고 있자면
그것들은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나 여기 있다고,
그저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라고,
걱정 말라고.
살아 있다는 옅은 신호만 내어준 채로
그렇게 조용히 추운 겨울을 견뎌낸 식물들은
봄이 가까워질수록 하나 둘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긴 겨울잠을 자고
슬슬 먹이 활동을 시작하려고 바깥으로 나오는 동물들처럼.
모두 제 각각의 속도로 움직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폭풍 성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여전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느릿느릿한 속도로 아주 작은 성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전히 때가 아니라는 듯 미동도 없는 경우도 있었고,
겨울철 내내 잘 버티다 오히려 시들시들 아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제 각각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 인생과 다를 게 없겠구나,라는 생각.
식물들은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제 속도로 묵묵히 살아낼 뿐,
옆에서 빠르게 새 잎을 펼쳐낸다고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뒤처지는 느낌에 앞서 가는 것들을 보며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도 않는다.
생긴 것도 다르고,
각 출생지에 따라 최적의 생육 환경도 다르고,
어떤 아이는 햇볕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아이는 그늘을 좋아하는 등 취향도 다 다르다.
너무 다른 친구들이 한 곳에 모여
아무런 잡음도 내지 않고 그렇게 그저 살아내는 모습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지금 내 인생도 이 식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지 겨울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고,
추운 겨울이 지나 나에게 딱 맞는 계절이 오면
나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잠깐일 뿐이라고.
영원한 건 없다고.
이 겨울 또한 결국 지나갈 것이라고.
고요한 이 시간을 그저 받아들여보라고.
어쩌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내가 숨을 고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숨 가쁘게 달려만 오느라 고생했다고.
이제는 조금 멈춰 서서 가빠진 숨도 들여다 봐주고,
나에게 어울리는 호흡을 찾아보기도 하라고.
가쁜 숨이 정말로 내가 원했던 숨이었는지,
나는 그저 천천히 내 숨을 쉬고 싶었던 것인지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