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이래저래 유명하고 논란도 많았던,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제목처럼 멈추고 나니 나의 지난 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에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어줬던 적이 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단 한 번도 없었다.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누구보다 내가 주체적으로 내 인샌을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토록 주체적인 내 삶에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니. 뭔가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주체적으로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뿐, 직업 외의 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관심을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의 나이 삼십후반. 나는 더 늦기 전에 진짜 나를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건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토록 나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에는 인색했을까.
지나간 일을 탓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다시 마음을 잡고 지금이라도 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어디냐 내 마음을 다독였다. 더 이상은 무슨 이유에서건 나를 다그치고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선 나에게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기한은 없었다. 그저 내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믿었던 것 같다. 바닥이 없는 것처럼 끝도 없이 가라앉던 그때에도 내 안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오래전에 한번 갭이어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갭이어를 고려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을 제공해 주고 유학을 연계하는 센터 같은 곳에 방문했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쉬어가는 것에 대해 나름 진지했었다. 심리상담센터도 아닌데 마치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놓듯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 얘기를 한창 떠들고 왔던 진상객으로서의 창피한 기억만 남았다.
결국 나는 멈추지도 않았고 떠나지도 않았다. 사실 이십 대였던 그때의 나는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갓 이룬 것들이 많았던 그때의 나는 그것들을 두고 멈춰버리면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십 년 전의 내가 아니었다. 갭이어라는 시간은 언제가 되었건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고 미룰 수도 없었다. 넘어진 김에 조금 누워있는 거지 뭐,라고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지혜가 쌓였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일 년이건 몇 달이건 며칠이건 그저 공백을 만들어주면 되는 거였다. 충분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충분히 지친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충분히 나라는 사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충분히 나랑 친해질 수 있도록.
여전히 불안이 나를 휩싸고 있었지만 나에게 시간을 선물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남에겐 그렇게 유하면서 스스로에겐 그토록 엄했던 내게 내가 처음으로 다정하게 손을 내민 순간이었다. 고생했다고.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잠깐 너를 위한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그때 처음 느꼈다.
결국 가장 강한 위로는 스스로가 건네는 위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