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숨고르기 (식물편)
지금 과거의 나처럼 어떤 이유에서건
관계에 지쳐 잠시 멈춰 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침대 밖을 혹은 집 밖을 나설 용기가 없어진 분들에게
나는 식물 키우기를 권하고 싶다.
식물 키우기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그 마저도 부담이 된다면
그저 내 눈앞에 조그만한 초록생 생명체를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눈앞에 초록이를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
내 마음의 상처는 회복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초록의 힘을 믿는다.
어렵지 않다.
식물을 잘 모르겠다, 하신다면
당근마켓 어플을 깔아서 '식물' 이라고 검색해보셔도 좋다.
여러 이유로 키우던 식물을 나눔 하는 이웃도,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는 이웃도 많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식물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 집으로 들여보자.
나는 똥손이라 선인장도 죽이는데요,
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어떤 사유가 됐건 마음의 상처로 인간관계에 지친 우리에게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의 생명력이 필요하다.
식물은 그 존재만으로 이런 생명력을 전달해준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생명력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는 걸 식물이 가르쳐 주었다.
존재자체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식물은
함부로 나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를 지킬 뿐,
그저 내 손길을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내 앞에 식물을 가져다 놓으면
어느새 그 앞에 다가가 그것들을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머지 않아
마음속에 작은 관심이 피어 오른다.
'목 마르려나, 물을 좀 줘볼까'
그러다 또 곧, 햇볕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식물을 옮겨주고 있는 내안에 숨어 있던
따뜻한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안에 그런 따뜻한 마음을 만나고 나면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싫어지고,
그 사람 떄문에 틀어박혀 있는 나도 싫어졌을 때,
그 누구보다 나를 아프게 찌르는 건
스스로를 책망하는 나 자신이기에
나에 대한 비난의 시선을 거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은 그것을 도와준다.
어느새 식물을 돌보는 마음은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변해있다.
식물에 나를 투영시키고 나면
그 손길 하나 하나의 정성이 달라진다.
관심을 주고 사랑을 줄수록
예뻐지는 식물을 보고 있자면
내 자신도 이렇게 식물 돌보듯
들여다 봐주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회복을 시작한다.
식물은 어쩌면 나를 돌보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식물을 키우며 가만히
거칠어진 내 호흡을 들여다봐주고
그 호흡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온전한 내 숨을 쉬기 위해
준비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에게
나는 조용히
작은 화분 하나를 건네고 싶다.
'초록이 좋아서'라는 연재북을 연재하며
순간순간 식물에게서 받는 영감들을 글로 적어냈다.
그 안에 나의 생생한 회복의 여정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