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루나무 Oct 29. 2020

유연하다는 것, 그것은 어려운 과제와 같다

오늘은 40분 정도 대기한 다음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심정을 토로했다. “융통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제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물이 흘렀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별로’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울어버렸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더니 “융통성이 뭐예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어떤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냐고 물어보시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후, 선생님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무언가 듣기는 듣는데 어려웠다. 잘 모르는 내용을 들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듯, 귓속을 맴돌았다. 머릿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귓속에서 맴돌던 문장들은 튕겨져 나가 나의 머리 위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나에게 막이 씌워져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오려니 스파크가 튀어서 지지직 하더니 문장이 부서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부서진 조각들은 바닥에 쌓여서 모래처럼 흩어져 있고.


이것을 알아챘는지 선생님이 “어렵죠?” 하셨다. 나도 “듣긴 듣는데….” 하며 말을 줄였다. 선생님의 말은 이해하기 쉬운데 오늘따라 어렵게 들렸다. 내가 지니지 못한 부분이라 더욱 그런 듯했다. 솔직히 남들이 나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말할 때,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연하다는 것, 그게 무엇일까. 나에게는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선생님이 방법을 알려주셨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흰색, 검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회색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모 아니면 도, 둘 중에 하나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조차 파악하신 것 같아 신기했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있느냐 없느냐 달라진다고 설명해주셨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유연하게 대처하지만 다른 때에는 고지식할 수 있어 그 사람이 모든 면에서 유연하지 못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만약 혼자 해보고 잘 되지 않는다면 같이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오늘 이야기가 어려워서 이 정도로 정리해본다. 어렵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혼자 해도 어려우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떠나가지 않는다.

이전 17화 아직도 말할 게 산더미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