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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차 Oct 15. 2019

처음 손톱 깎던 날

못난 나를 바라보기

내 손톱은 작고 못생겼다. 매니큐어 바르는 분들의 것처럼 길쭉하지 못하고 몽땅하다. 그 끝은 곡선이 유려하지 못하게 일一자로 깎여 차라리 사각형을 연상시킨다. 누구든 쉽게, 지나가는 말로 ‘손톱 한번 못났다’고 말할 정도다.


손톱이 밉다 말하고 나니 손 전체가 이상한 듯 느껴진다. 앞으로 수십 년은 족히 더 써야 할 손인데, 애정을 못 가져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든다.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은 같은 손, 같은 손톱을 달고 살아야 할 텐데 말이다.


엄마가 내 손톱을 깎아준 하나의 기억이 있다. 물론 짧은 동거 기간 동안에도 손톱이야 더러 잘라주곤 했겠지만 내 기억에 남은 건 한 번뿐이다. 손톱을 깎아주던 엄마는 무심코 내게 손톱이 참 못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별다른 대꾸를 찾지 못해 반대 손을 내주고서는 다른 손으로 방바닥으로 장판만 뜯었다. 그 뒤로 손톱 깎는 시간이 별로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다른 사람이 내 손톱을 깎아준 기억은 그때가 마지막이다.


차가운 은색 손톱깎이를 받아들었던 첫 기억이 있다. 어떤 일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이 내 앞에 던져졌다. 처음으로 화장실 마무리를 했던 날, 처음 내가 밥 먹은 그릇을 닦아야 했던 날, 그리고 처음 스스로 내 손톱을 잘랐던 날. 어린 나는 익숙한 동네 어귀에서 길을 잃은 듯 잠깐 멍해졌다. 남겨진 느낌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익숙한 곳에서 홀로일 때.


남겨진 느낌이란 그런 것이다. 문득, 익숙한 곳에서 홀로일 때.

 

내 손가락보다 더 긴 손톱깎이를 나는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한 손톱을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잘라야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딱, 하고 허연 부분을 끊어내고는 잘린 곳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옳게 자른 건지 싶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 손톱의 모양은 어릴 적에 멈춰 있고 그 위 불투명한 부분만 자랐다, 잘렸다를 반복한다. 손톱쯤이야 당연하다는 듯이 혼자 자를 날을 기다렸으면서도 어떤 생각들은 예전 그날에 멈춰 있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못생긴 손톱을 보기가 불편하지 않다. 이제는 누군가 예쁜 손톱을 갖다 붙여주고 내 것을 떼어 간다고 해도 거절할 것 같다. 이 뭉툭한 손톱은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홀로 남겨진 당혹감과 혼자 걸어갈 시간을, 바라봐도 달라질 것 없는 무엇을.


손톱으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회상이 끝나면 잔상은 흩어지고 지금의 내가 남는다. 나는 처음으로 손톱깎이를 쥐고 또각거렸던 그때처럼 이내 괜찮아진다. 가끔 혼자가 되어도 괜찮다. 가끔 뒤 돌아봐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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