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고, 비워지고, 메워지는 기억의 덩어리
지난 일은 잊고 지낸다. 마음 편하게 산다고 할까? 과거를 기억하는 데 쓰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그런 내 모습이 민망할 때도 있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그들과의 추억에 등 돌리는가. 친구에게 “네 생각 나서 전화해 봤어” 같은 연락을 하는 일도 드물다. 내 하루는 오늘의 나와 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삶의 무게중심이 과거에 있는 사람들도 예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과거에 사는 인간형은 미련하게 느껴진다. 반짝였던 과거와 대조적인 그들의 현재형 고통에 공감하고 싶다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적어도 나는 젊었을 적이나 잘나갔던 때의 무용담이나 늘어 놓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과거를 잘 잊는 내 성격은 굳어진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게 설계된 내 성격을 해석하자면 말이다. 어딘가 결여된 채로 남들과는 몇 발짝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그저 얼른 성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식어버린 마음의 온도를 덥히기 위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믿음 같은 것에 매달려 생활의 통증을 잊으려 했던 걸지도.
그러나 삶은 기억의 뭉치다. 점차 변하고, 비워지고, 메워지는 기억의 덩어리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한 구석에 내버려 두고 살다가는 종내, 비를 흠뻑 맞은 소금자루처럼, 내 삶은 초라한 한 줌짜리 기억으로밖에는 남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내가 늦게 알아챈 것은 그동안 내가 방치해둔 기억들 사이에 드물게 보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보냈던 시간들, 내가 묻지 못했던 아픔과 그 환부들, 다시 떠올려 주지 않으면 영영 되살아나지 못할 그 모든 순간들. 순간은 오직, 잊지 않으려는 시도에 의해 영원이 될 수 있다. 다행인 점은 기억을 짚어줄 계기들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떠나지 않은 친구들. 건강을 잃지 않은 가족들. 전화기 앨범 속 사진들. 일기장과 수첩에 남은 기록들. 그리고 다시, 현재에 온전히 머무는 것만이 더 좋은 과거를 만들고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안다.
2020. 03.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