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일기
스무 살은 불안하다. 스물은 서른보다 막연한 나이다. 세상에 대한 무지와 호기심과 오해. 불안은 밤마다 내 곁에 누워 내 등을 지켜봤다. 내가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지우기 힘든 느낌. 그때는 그 느낌을 부르는 이름도, 내가 그러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다만 끊임없이 뭔가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내 모습이 나의 불안을 비춰 주는 정도였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지독한 사실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정답이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을 주며 성공한 자들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성공한 자들은 옷을 잘 차려 입은 채 조명을 받고 무대에 오른다. 나는 박수를 친다. 인생을 바꾼 이야기를 경청한다. 메모도 하고 실천도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 길은 없다. 내 나름대로는 된다고 하는 길, 꼭 가져야 한다고 하는 조건들을 하나씩 채우며 살아왔지만 아무도 내 앞길에 마중 나오지 않는다. 성공이 정답이 아니라는 소문마저 들려온다. 모두가 결론으로 입을 모으는 귀결점은 ‘하고 싶은 일’이다. 내 안에서 길을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있더라도, 뚜렷이 구분될 만큼 남보다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하면 잠들기가 어려워진다. 생활에 안정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머릿속을 날아 다니는 두서 없는 생각들에게 ‘쓸 데 없는 걱정 말고 잠이나 자라’고 해도 안 먹힌다. 불면에 시달릴 때의 나는 이제 그만 자자고 나를 달래거나 PC의 전원을 끄듯 뇌를 꺼 보거나 몸에 힘을 빼 보거나 끝없이 자세를 바꿔 보거나 그도 안 되면 일어나 앉아 보거나 억지로 잠을 참아 보거나 도대체 잠이란 어떻게 자는 것이었는지 생각해 내려 애쓰거나 하다가 유리창에 푸른 빛이 감돌 때쯤에야 겨우 잠들었다. 잠을 자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며, 불면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다.
요즘의 나는 잠드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불안을 이겨냈거나 지워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불안은 내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남았을 뿐이다. 불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다.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 불안에 귀 기울이게 된 것. 불안을 계기로 삼아 행동할 수 있게 된 것. 여기까지다. 제때 벨을 누르지 않으면 나는 원하지 않는 곳에 내리게 될 것이다.
2020. 03.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