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의 손』 1막 2절 – 그날의 노인

누군가의 침묵이 생명으로 향할 때

by 따뜻한꼰대 록키박

� 1막 2절 – 그날의 노인


최명식.

광주 북구의 한 오래된 다세대 주택 1층에 사는 노인이었다.

일흔일곱.

아내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서울에 있었다.

홀로 사는 데 익숙했고,

동네 슈퍼와 마트는 그의 일과였다.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약은 복용 중이었지만, 판단력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그날도 그는 단지 ‘달걀’을 사러 나선 것뿐이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알았고, 우산도 챙겼다.

그러나 그 비가 이렇게 위협적인 존재일 줄은 몰랐다.


“비가 좀 많네…”

그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골목을 나섰다.

발밑은 이미 진흙탕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생활은 계속돼야 했다.

세상은 그에게 "위험하니 집에 있으라" 하지 않았다.


노인의 우산은 뒤집혔다.

비는 정면에서 쏟아졌고,

시야는 흐렸다.

도로의 경계는 이미 물에 지워진 지 오래였다.

한 발 한 발,

기억을 따라가듯 걸었다.

익숙한 길이라 믿었고,

슈퍼는 눈앞이었다.


그 순간,

“푹.”

두 다리가 무너졌다.

땅이 꺼진 게 아니었다.

맨홀이 열려 있었다.


폭우로 뚜껑이 떠올라 열린 채 방치된 맨홀.

물이 그 위를 덮고 있었기에,

아무도 몰랐다.

노인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한 손은 비닐봉지,

다른 손은 접힌 우산이었다.


둘 다 물에 빠져버렸다.

몸이 앞쪽으로 쏠렸지만 허리는 꺾인 채 멈췄다.

두 다리는 맨홀 속에 완전히 끼었고,

상반신만 물 밖에 남았다.


비는 계속됐다.

허리까지 찬 물이 노인의 몸을 때렸다.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구의 도움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흐릿하게 고함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았지만,

비의 소리가 전부를 삼켰다.


그는 도망갈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다.

몸은 점점 차가워졌고,

팔에는 감각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물이 점점 얼굴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노인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려고 고개를 젖혔다.

그러다 뭔가— 가게의 간판이었을까,

하늘 위 어렴풋한 실루엣 하나를 본 듯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건가…?”

그러나 곧 눈이 흐릿해졌다.

물의 온도도, 바람도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은 『폭우 속의 손』 1막 3절 「침묵 속의 외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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