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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25)

칫솔, 달력

by 김민주

<사실>


칫솔=칫솔


달력=달력


자, 그럼 칫솔과 달력이 함께 있다면? 달력과 칫솔이 함께 있는 것도 괜찮다.


칫솔과 달력=칫솔과 달력


이 글은 칫솔과 달력에 대한 것이다. 당신은 칫솔과 달력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끈질기게 칫솔과 달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아마 악착같이 칫솔, 달력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든 엮고, 묶고, 닿게 만들어서 글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칫솔은 달력이다.

달력은 칫솔이다.


우리는 앞으로 칫솔을 달력이라고 하고, 달력을 칫솔이라고 하기로 한다.


아, 잠깐만요. 그러니까 칫솔이 달력이고, 달력이 칫솔이라는 거죠? 그냥 이름이 바뀐 걸까요?

편할 대로 생각하세요.


민주는 칫솔을 꺼내 들었다. 치약을 짜고, 입에 넣는다. 어금니부터 문지르기 시작한다. 금방 거품이 입 안에 차오른다.


아, 잠깐. 지금 그럼 달력으로 이를 닦고 있는 거예요?

글쎄요. 저야 모르죠. 뭘 생각하고 계시는데요?


화장실에서 나온 민주는 책상 앞에 앉아 달력을 넘긴다. 2025년 3월 23일의 칸에 ‘쓰는 사람 128차 정기모임’이라는 글자를 적는다.


아니, 칫솔로? 아니지, 칫솔에 쓰고 있다는 건가요?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그럼 누구한테 물어요?

저의 대답이 중요한가요?

네?


당신은 민주가 쓴 글을 읽고 있다. ‘칫솔’과 '달력',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인 <사실>에 대해서 골몰한다. 당신은 민주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쓴 것인지 알고 싶다. 어떻게든 답을 찾고 싶어 '칫솔'과 '달력', <사실>을 어떻게든 엮고, 묶고, 닿게 하려 한다.

하지만 민주의 <사실>은 어떻게든 당신의 <사실>이 될 것이다. 그럼 그것이 <사실>일까?


당신은 바로 전 문장을 보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민주를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민주를 부른다.


민주님, 무슨 생각하면서 썼는지 물어봐도 돼요?


민주는 동그란 눈으로 당신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인위적으로 입꼬리를 올린다. 여전히 민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사실>에 대해 들을 것을 기대한다.


이 글에서 민주는 끝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당신은 이 글만 읽어서는 민주의 <사실>에 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사실>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사실>=<사실>




<사실 번외>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민주의 <사실>에 닿았다.


네?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데요?


당신은 민주를 붙잡아 세워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 민주는 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린다. 이쯤 되니 민주가 답답하다. 민주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게 뭔지 아는 게 중요한가요? 그보다 저 좀 놔주세요.


민주는 헤헤 웃으면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당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한다. 당신은 놀라면서 손에 힘을 뺀다. 민주가 빠져나간다.


당신은 집에 가면서 민주를 잡았던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민주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떠올린다. 민주의 <사실>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 1 : 민주의 <사실>을 포기한다.

당신 2 : 민주의 <사실>을 믿는다.


민주 : 동그란 눈으로 당신 1/당신 2를 보면서 씨익 웃는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움직이며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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