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에 한 번 회사 후배들과 등산 모임을 한다.
오늘이 그날이다.
코스는 항상 동일한대 수서역에서 만나 대모산,
구룡산을 지나 점심을 먹는다.
밥값을 회비에서 지출하기 때문에 못 온 사람은
100% 손해 보는 시스템이다.
총 6명인데 전원이 참석하면 저렴한 메뉴를 먹고
참석자가 적을수록 비싼 걸 먹는다.
못 온 사람 배 아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심은 먹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왜냐면, 오늘은 모처럼의 가족 외식이 있는 날이고 큰 아이가 좋아하는 뷔페에 가기 때문이었다. 이번부터 식사시간이 1,2부 통합되어 5:30부터 9:30분까지 장장 4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4시간 동안 먹을 배를 만들어야 했다. 아침에 셀러들만 먹고 막걸리 3잔 마시고 졸졸 굶었다. 식사하면서 중간에 책도 읽고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다시 들어올 요량이었다.
하산하는 도시의 날씨는 청명하고 하늘은 예술이었다.
C가 모처럼 전화를 했다. "번개 친 거 봤지?" "응" "오라고" "안돼 못 가, 가족 외식이 있어!"
번개 시간은 7시, 뷔페 식사시간은 9시 30분까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이 좀 넘자 큰 아이는 벌써 다 먹고 갈 준비를 마쳤다. 좀 더 먹어보라고 둘째에게 얘기하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헝그리 정신이 없네!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시간까지 버티기로 한 굳은 의지는 배가 풀러 올수록 점점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 아득했다. 2시간이 되자 우리도 결국 항복했다.
아이들의 합리적 선택 덕분에 번개에 합류했다. 감미로운 와인과 재즈, 간만의 수다로 배보다 마음이 더 부는 밤을 누렸다. 3년 만에 처음 번개라 더 반가웠다. 돌아오는 산책길은 밤바람이 부드럽게 내 몸을 어루만지는 듯 따뜻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행복은 강도 보다 빈도다."라고. 4시간 버티기를 포기한 덕분에 얻은 하루 세 탕의 행복에 감사한 하루였다.
행복은 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