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통해 내 짜증을 알아차리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명상을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인터넷에 명상원, 명상센터 검색하면 꽤 많은 오프라인 명상센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의 아주 가까이에 최고의 명상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곳은 바로 회사다!
명상 = 알아차림이라는 공식을 대입한다면, 회사는 나의 수많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좋은 최고의 수련장이다. 특히, 당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분노와 짜증, 불안을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지금 당장 명상 = 알아차림의 공식을 깨우치고 회사를 마음 수련의 장으로 활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경험상 명상은 내가 회사에서 분노하거나 짜증 났을 때 그 효과가 가장 빛을 발휘한다.
이번주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미팅이 많아지며 약간 예민해지던 참이었다. MBTI 마지막이 J로 끝나는 나는 갑작스러운 일정이나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잦은 미팅이 스트레스였던 이유는 모두 다 갑작스러운 초대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나의 상사가 일이 바빠지면서, 그가 미팅 참석이 어려울 때마다 나를 대참자로 지정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사전에 미리 말을 해준다면 당연히 양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당일 오후 3시 미팅에 참석할 수 있냐거나 영문도 모르는 내용을 전달하며 담당자를 나로 지정할 테니 미팅에 참석해 달라는 일방적 통보가 잦아지면서부터는, 나도 사람인지라 점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점점 R&R을 무시한 채 나를 본인의 비서마냥 활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팀장과의 1:1 미팅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면담도 당일 1시간 전에 갑자기 팀장이 일방적으로 잡은 미팅이라, 솔직히 달갑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잡은 면담 때문에 나는 동일한 시간에 예정되어 있던 다른 미팅을 양해를 구하고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팀장은 본인이 이번주 너무 바빠 미팅 시간이 지금밖에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고,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2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1. 최근에 초하님께 대참을 요청하는 미팅이 많아져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사전에 미리 아젠다를 파악하고 전달해야 하는데, 나도 바빠서 못 챙길 때가 많았다. 그런데 본인이 미팅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대참을 부탁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양해해 줬으면 좋겠다.
2. 초하님도 알겠지만 우리 팀 ㅇㅇ님의 업무 실수가 너무 많다. 내가 ㅇㅇ님께 아무리 주의를 줘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 초하님이 ㅇㅇ님과 이야기해서 그가 업무량이 많아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실수가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고 나한테 이야기해 줘라.
나에게 이 2가지 아젠다를 속사포로 던진 팀장은, 본인이 바로 다음 미팅이 있다며 면담을 종료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나로서는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황당한 이야기만 듣다 나온 셈이었다.
"아니, 지금도 미팅이 많아서 내 일할 시간이 없는데 이제 작정하고 대참을 시키겠다고? 다른 사람 시키기 애매한 정체불명 미팅들만 대참 시키는 것 같아서 짜증 나는데 이제 대놓고 시키겠다는 거네. 내가 계속 알겠다고만 하니까 내가 만만한가? 진짜 나를 자기 비서로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ㅇㅇ님 실수 많은걸 왜 나한테 고민하라고 해? 그건 팀장의 역할이지! 자기도 컨트롤 못하는 걸 왜 나한테 넘기는 거야. 나보고 지금 ㅇㅇ님 뒤치다꺼리까지 하라는 건가?" (참고로 ㅇㅇ님은 업무 실수가 많기로 사내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다.)
"아 ㅇㅇ님 뒤치다꺼리까진 못한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말을 했어야 했는데! 나한테 말할 기회도 안 주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고! 아 답답해!"
미팅은 3시 30분에 끝났다. 그리고 미팅이 끝난 직후부터 퇴근할 때까지 나는 하루 종일 짜증이 난 상태였다. 나의 짜증을 같은 팀 동료에게 속사포처럼 풀어냈어도, 좀처럼 해소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 채 팀장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끝으로 미팅이 끝난 게 컸던 것 같다. 답답하고 짜증 나는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의 짜증은 퇴근하고 와서 집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거울을 보고 한참 화장을 지우는 와중이었다.
"다음 주에 다시 미팅하면 ㅇㅇ님 뒤치다꺼리는 못한다고 바로 말해야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그분이 실수하지 않는 걸 기대하지 마셔라 이야기해야지. 앞전 팀장님도 애초에 포기한 부분이라고 말해야지. 팀장님도 해결하지 못하는걸 내가 어떻게 해결하냐고 꼭 말해야지."
"미팅도 자꾸 이런 식으로 많아지면 조만간 날 잡아서 제대로 이슈레이징 해야지. 미팅이 너무 많아서 내 일할 시간이 없다고 해야지. 알앤알에 맞게 배분해 달라고 꼭 말해야지."
근데 나 지금,
퇴근해서도 회사 일로 짜증 내고 있잖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 답답함 때문에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드디어 알아차렸다. 내가 퇴근하고 나서도, 낮에 있었던 회사 일 때문에 저녁 9시가 지난 지금까지 짜증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초하야. 너 지금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지금까지 짜증 내고 있어. 퇴근 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아직까지 회사 생각을 하고 있니? 너는 즐거운 생각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
내가 계속 지나간 일로 짜증 내고 있었단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내 감정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이미 지나간 일에 짜증 내봤자 나에게 득 될 것이 없었다. 둘째로 미래에 벌어질 일을 상상해 봤자 허상이고 시간낭비였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명상이라 그렇게 매일 수련하고 연습했는데, 오늘의 나는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 속에서 쓸데없는 감정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here and now에 집중하자고 혼잣말을 하는 그 순간, 놀랍게도 오늘 오후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짜증이라는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 감정에 몰입했던 '나'에서 빠져나와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나'가 되었다.
명상=알아차림이라는 공식을 대입해 본다면, 나는 이 순간 내 감정을 알아차리면서 명상을 통해 과거와 미래에 있던 내 마음을 지금 이 순간, 현실로 가져오는 것에 성공하였다. 지난 4~5개월간 매일 혼자 명상하며 부단히도 노력해 왔던 효과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내 감정은 짜증에서 순식간에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내 짜증 나는 감정을 알아차렸어! 그리고 알아차리자마자 지나간 과거와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짜증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어! 이 사실을 떠올린 순간 오늘 하루종일 날 괴롭혔던 짜증도 사라졌어! 이게 바로 명상의 효과야! 이렇게 내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것이었어!'
나는 갑자기 엄청난 뿌듯함과 희열을 느꼈다. 회사에서의 짜증 났던 기억 덕분에 내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극복하는 경험을 생생하게 된 것이었다.
회사는 내가 독학으로 배운 명상을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수련장이다. 온갖 희로애락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나는 나의 다양한 감정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감정을 몰입하는 나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그런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시각을 가지게 된다. 덕분에 나는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멘탈갑 직장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회사는 최고의 명상 수련센터임이 틀림없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수행한다는 마음으로, 내일의 출근도 준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