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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현 Apr 28. 2024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자전거 명상

자전거 초보가 라이딩을 하면 명상이 됩니다.

요즘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씨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겨울 내내 잠들어 있던 자전거를 다시 꺼내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 이 순간을 어찌나 기다렸던지? 난 작년 가을에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샀었다. 기껏해야 따릉이 정도만 탔던 게 전부였는데, 처음으로 내 나름 큰돈을 들여 자전거를 산 것이다. 자전거를 사고 몇 번 타지도 못했는데 야속하게도 찾아온 겨울이 얄밉게만 느껴졌었다. 그렇게 날이 따뜻해지기 만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봄, 자전거의 계절이 온 것이다!




2024년 첫 라이딩, 일요일 오후 5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원래 일요일 5시는 끝나가는 주말을 애도하는 슬픔의 시간이다. 주말은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지, 정신 차리면 월요일이라는 녀석이 코 앞으로 다가와있다. 난 월요병이 워낙 심한 사람인지라, 평소에는 일요일 점심시간 이후부터 급격하게 우울했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근 4개월 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는 날이었다. 집 근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한강변까지 가는 내내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인데 잘 탈 수 있겠지? 사실 나는 자전거를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자전거 초보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보니, 자전거는 늘 탈 때마다 긴장되면서 설레는 존재이다.


긴장 반 설렘 반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한강 공원에 도착했다. 이제 자전거 도로 초입이다. 다른 자전거 라이더가 오지 않는지 확인하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타이밍을 체크한다. 헬멧을 고쳐 쓰고,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조심스럽게 오른쪽 페달을 먼저 밟아본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인데, 균형 잘 잡을 수 있겠지? 자전거 타는 건 몸이 기억한댔어. 긴장하지 말고 한번 가보자고!


오른쪽 페달, 왼쪽 페달 번갈아 밟아가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내 페달질에 맞춰 나의 흰색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긴장한 채로 출발한다. 자전거 도로 오른쪽으로 붙어 가면서 나만의 속도로 자전거를 타본다. 핸들을 꽉 잡은 두 손에서 약간의 땀이 나는 것 같다. 오랜만에 페달을 밟으니 허벅지와 무릎에도 꽤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안장을 너무 낮췄나? 페달을 밟는데 무릎이 쫙 펴지지 않아 무릎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이따 잠깐 쉬는 타이밍에 안장 높이를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4개월 만에 타는 자전거에 내 몸을 맡기면서, 동시에 페달을 밟는 내 발과 무릎, 허벅지, 핸들을 꽉 잡은 두 손과 달리는 동안 살짝 굽어질 수 있는 내 허리의 감각을 느끼며 2024년 첫 라이딩을 시작했다.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긴장하며 타는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며 이내 곧 적응이 되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잠수교를 지나 비교적 자전거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서빙고 - 이촌을 지나니 주변 자연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거진 푸른 나무들이 자전거 도로를 따라 1열로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간, 이제 해가 지려는지 빨간 일몰이 슬금슬금 보이고 선선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있다. 양 옆의 초록 나무들과 붉은 일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이 순간, 나는 이번 주 중 가장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씽씽 달리던 자전거를 한편에 세워두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번주 최고의 기억, 지금 이 순간을 계속 기억하고 싶었다. 일요일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월요병의 슬픔은 나에게 없었다. 오직 지금 내가 있는 이 장소, 이 자연과 바람, 헬멧 사이로 약간 난 땀방울과 오랜만에 탄 자전거로 약간 뻐근한 허벅지, 내 몸의 감각, 내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만 있었다.


이 날이 참 좋은 기억이어서 내 개인 SNS에도 사진을 올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날, 자전거를 탔던 그때 그 순간이 명상이었단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탄 자전거에 긴장하며 내 몸의 모든 감각에 집중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던 순간, 그리고 이내 자전거 타는 감각에 익숙해지며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던 순간, 마침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자연을 보고 감동하던 순간, 내 피부에 닿는 시원한 바람에 행복했던 순간,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로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때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주중에 겪었던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다가 올 월요일의 짜증이 없었다. 오로지 페달을 밟고 있던 두 발, 핸들을 꼭 잡은 두 손, 양 볼을 스치는 바람과 내 눈에 보이는 나무, 하늘만 있었을 뿐이다.


2024년 첫 라이딩의 기억이 너무 행복했어서, 이 이후로 주말마다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있다. 어느새 초여름 더위가 성큼 와서, 최근에도 오후 5시 넘어서 늦은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 요즘 같은 날,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면? 가까운 공원에서 자전거 한 번 타보길 추천한다.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다면 익숙하지 않은 대로, 자전거를 잘 탄다면 잘 타는 대로, 저마다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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