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직원전용 편 ep. 1>
요즘 여름휴가철이라 주변에 바닷가, 계곡, 워터파크 등으로 물놀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을 오히려 즐길 방법을 찾았다. 지금에라도 다시 가고 싶은 크루즈 승무원 시절 물놀이의 현장으로 타임머신 여행이다. 3편에 걸친 나만의 물놀이 휴가다.
두 번째는 뷰가 끝내주는 수영장 이야기이다.
직업에 따라 직장에서 직원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있다.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오는 혜택에는 초국제적 환경에서 본인의 업무능력 및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등이 있다. 각기 다른 크루즈 선사라는 직장에서 오는 혜택에는 선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직원전용 공간 및 가족할인 등이 있다. 선사에서 제공하는 혜택은 소속부서 및 직책에 따라 다소 차등이 있다.
이중 선사, 부서, 직책 불문하고 동일하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
크루 풀 (Crew Pool)
바로 직원전용 수영장이다.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거나 수영을 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지만, 기분 내기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상하게 다들 크루 풀은 잘 이용하지 않아서, 어쩌다 가서 혼물놀이하거나 친구들끼리만 있기에는 안성맞춤 사이즈다.
전용 수영장에서 몸을 적셨다가, 전용 발코니에서 선베드 위에 누웠다가, 마치 크루즈 승객이라도 된 마냥 여유를 내보는 것도 꽤나 매력적인 직원찬스다.
게다가 이 수영장은 최고 뷰맛집이다. 끝없게 펼쳐진 바다와 수평선, 그 위를 덮는 하늘과 구름, 태양의 이동에 따른 색의 변화, 반짝이는 별과 무지개는 기본이다.
배의 이동에 따라 운하나 사막이 보이기도 하고, 도시 한복판에 있는 듯한 고층빌딩이나 유명한 관광 아이콘이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때는 수십 척의 이웃 배들을 보면서 놀기도 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뷰를 선사하는 최고 뷰맛집 수영장이다.
내가 근무했던 두 선사에서는 크루 풀이 모두 선수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꼭 조타실에서 안 보고 싶어도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그것도 조타실에 있는 사람들은 크루 풀에서 뭐하는지 다 볼 수 있는데, 크루 풀에 있는 사람들은 조타실 안을 볼 수 없다.
처음 크루즈 승무원으로 승선했던 선사에서 우수사원 상을 받고 조타실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부선장이 너 비키니 입고 노는 거 다 보고 있다며 놀렸다. 큐나드에서는 크루 풀에서 놀고 그날 저녁 크루 바에 가면 항해사들이 재밌었냐며 누구 약 올리냐며 놀리곤 했다.
크루 풀에서 놀 때는 항상 텀블러를 가져갔는데, 그 안에는 화이트 와인을 담아갔다. 주류반입금지라는 규정이 있었지만…. 뷰맛집에서 태양욕을 즐기는데 와인을 안 가져갈 수가 없었다 ㅎㅎ
작은 직원전용 수영장도 좋지만, 승객전용 수영장은 더 좋다. 바로 그 수영장을 직원전용으로 이용한 적이 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 중이었다.
승선하고 5개월이 지난 2020년 3월이었다. 원래는 한 달 후에 하선하고 귀국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시드니에서 2천 명의 모든 승객을 하선조치하고 천명의 직원들만 배에 남아 갈 곳 없이 바다 위를 떠돌게 되었다. 해상격리 기간은 5개월이었는데 당시의 매일을 브런치에 기록하는 것을 위안 삼아 버텼다.
솔직히 시드니에서 쫓겨날 때만 해도 승객들한테 해방되어 직원들만 있다는 사실에 공짜 크루즈를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내 나라로 내 집으로 언제 어떻게 갈 수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그 모르는 것을 언제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을 약해지게 만들 수 있는지 꿈에도 모를 때였다. 바다 위를 떠돌며 배 안에만 5개월을 갇혀 있으면서, 모든 직원들을 귀가시키고 나서야 마지막 순서에 귀국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를 때였다. 다시 생각해도 잘 버틸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주심에 감사할 뿐이다.
해상격리를 선언하고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아직 불안한 분위기가 심각하게 퍼지기 전이었고, 회사에서 위로와 격려차원으로 바베큐 파티를 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는 적도를 지나면서 수영장을 개방하여 크루즈 문화 중 하나인 적도축제를 하기도 했다.
4개월 정도 지났을 때는 드라마 같은 하선작업들도 꽤 많이 끝냈고 100명 정도 남았을 때였다. 나도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기대해 봐도 될만한 때였다.
게다가 선장이 승객전용 수영장을 아예 직원전용으로 상시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해 준 때였다. 친한 친구들도 다 먼저 집에 보내고, 방에서 사무실에서 거의 항상 혼자의 시간을 버텨야 했던 때였기에 수영장 개방이 꽤나 기쁜 소식이었다.
개방 첫날은 홍해를 지나는 날이었다. 모세의 기적을 떠올리며 괜스레 거룩해지는 날이었다. 홍해를 항해한다는 사실에, 혼자서 엘리자베스의 수영장을 즐긴다는 사실에, 감동하며 감사하며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에도 수에즈 운하를 지나면서 지중해를 지나면서 엘리자베스 수영장에서 혼물놀이를 만끽했다.
수영장에서 몸을 띄어 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보트를 빌려 바다수영하면서 논 적이 있는데, 그때의 재미와는 비교가 안 되는 묘사하기조차 어려운 느낌이었다. 마치 넓디넓은 푸른 바다 위에 나만 있는 듯한, 바다도 하늘도 배도 다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그래서 모든 외로움도 두려움도 복잡함도 다 떨쳐버릴 수 있는 듯한, 그런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자체는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재앙이지만, 해상격리 경험 자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크루즈 승무원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물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