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쓰름하고 빈 것 같은 감정의 이름은 바로 상실감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 것이 아닌 시간'을 나도 모르게 누리고 있었나 보다. 짧아진 시간을 잘 사용하기로 했다.
이사 2주 차, 드디어 아이 방에 쌓여있던 짐을 다 정리했다.
드디어 방 가운데 쌓여있던 짐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짐산이 사라졌다. ⓒ청자몽
주말에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고, TV 속 뽀로로가 아이와 더 놀아준 덕분에 정리에 가속도가 붙었다. 방 가운데 쌓여있던 나머지 짐을 열심히 옮길 수 있었다. 드디어 방에 쌓여있던 짐을 다 치웠다.
후련하다!
아직 베란다 창고 짐과 부엌 정리, 옷 봉지 2개 정리를 더 해야 하지만, 그래도 방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큰 짐 산이 사라지니 정말 후련했다.
그렇다. 눈앞을 가리던 짐산이 사라져 버린 것. 큰 산 하나를 넘고 나니, 작은 산 3개는 후다닥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산을 넘고 나면, 다시 서랍을 하나씩 열어 천천히 정리해야겠다.
그때부터 진짜 정리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짐들을 다른 자리로 옮기는 중이다.
상실감
이사 2주 차인 지난주 월요일부터 아이가 새로운 유치원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전학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없던 자리를 운 좋게 들어가서 잘 다니기 시작했다. 새 유치원에서, 아이는 원칙대로 '정규반'이 되었다.
원래 '방과 후 반'은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사 전 유치원은 맞벌이 아니어도 방과 후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치원의 규칙은 원장의 재량에 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역시도 운이 좋았든가. 아이는 이사오기 전까지 방과 후 반을 다녔다. 그래서 4시 20분에 하원했다.
작년에는 5시까지 있어줬는데, 올해 들어서 4시 20분에 하원하기 시작했다. 그쪽 유치원도 하원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5시에서 4시 20분으로 하원시간이 줄어들었을 때 당황했다. 40분이 사라졌어.
그러던 것이 이제, 이사 와서 2시 15분으로 바뀌니 훨씬 더 당황스러웠다. 2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4시 20분일 때도 시간에 쫓겼는데, 2시 15분이 되니... 게다가 이사한 다음 정리까지 해야 되니... 흠.
아무것도 안 해도 훅훅 줄어드는 게 시간이었다. 쫙쫙 쥐어짜도 30분 ~ 1시간 정도밖에 없다. 진짜 큰일이다. 누가 내 시간을 다 훔쳐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며칠 심하게 우울했다. 우울하니 정리는 더 하기 싫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
그러다가 마음을 바꿨다.
그래. 원칙대로 하는 게 맞지. 내가 그동안 되게 운이 좋았던 거야. 맞벌이 아닌데, 2년 넘게 2시간 반 넘는 시간을 누린 거였다. 방과 후 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간 거라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게다가 그마저도 맨날 시간 없다고 툴툴댔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건 그만 잊어버리고, 새로운 곳에 왔으니 새 환경에 적응하기로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줄이든, 자투리 시간을 아끼든. 그동안 했던 자잘한 낭비들을 줄여보기로 했다.
시간이 이렇게 귀한 자원이었는지 몰랐다.
잃고 나니 알게 됐다. 미련하게도...
마음을 한번 털고 나니 오히려 정리도 잘 됐다. 포기할 거 빨리 포기하고, 적응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초등 입학까지 4개월여 남았지만, 미리 경험한다 셈 치기로 했다. 초등학교는 더 빨리 끝나려나? 그나저나 2시도 못 돼서 학교가 끝나면, 대체 초등학교 아이들은 저녁까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그래서 학원 다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