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여섯 번째 독백
몇 해 전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생활예능에서 김부각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층에선 때아닌 김부각 열풍이 불었다. 솟구치는 인기에 온라인 상품 일부는 품절이 되기도 했다. 김부각을 어릴 때부터 먹어온 나에겐 사람들의 열광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낮의 햇빛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지는 여름이 되면, 할머니는 찬장 한편에서 묵은 김 한 묶음을 꺼냈다. 볕이 잘 드는 계절에 해 먹기 좋은 김부각을 만들기 위해서다.
바삭하고 고소한 김부각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찹쌀풀이 필요하다. 냄비에 찹쌀가루와 물, 약간의 소금을 넣고 약불에서 곱게 풀어준다. 하얗고 뽀얀 찹쌀풀에 적당한 점도가 생기면 불을 끄고 한 김 식혀준다. 그동안 김을 가져와 정확히 사등분으로 나누어 잘라준다. 사실 정확히 나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보기 좋은 부각이 먹기도 좋을 것이다.
찹쌀풀이 적당히 식었다면 김에 풀칠을 할 차례이다. 접시 위에 김 한 장을 올리고, 김의 사면에 풀이 골고루 발릴 수 있도록 펴 발라준다. 풀이 마르기 전에 고소함을 더해줄 참깨 한 꼬집도 잊지 않고 올려준다. 이때 고운 고춧가루 한 꼬집을 더하면 매콤 짭짤한 김부각이 된다.
풀옷을 입은 김부각들이 달라붙지 않게 투명비닐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띄워준다.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훈풍에 찹쌀풀이 살짝 마른 듯하면, 지금부터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바삭하게 말릴 시간이다.
김부각을 올린 비닐을 들고 옥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옥상에 도착하면 집에서 챙겨 온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비닐을 올린다. 옥상 위를 누비는 거센 바람에, 앞선 고생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돗자리와 비닐의 사면을 고정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떤 날은 마알간 태양이 도시를 덥히다가 갑작스러운 변덕을 부릴 때가 있다. 가늘게 떨어지던 빗방울이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이런, 여우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대충 구겨 신고 옥상을 향해 달음박질한다. 세찬 비가 온몸을 적시든 말든 돗자리와 비닐을 한 번에 싸매곤 서둘러 집으로 내려온다. 물론 오래 머물지 않고 홀홀 떠나버릴 여우비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부각들과 함께 다시 옥상을 올라야 할 것이다.
며칠간의 수고로움 끝에 김부각이 한가득 만들어진다. 여름 내내 우리 가족의 든든한 반찬이 될만큼 넉넉한 양이다. 완성된 김부각은 비닐봉지에 소분하여 담아두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밀봉해 둔다. 식사시간 전 먹을 만큼 꺼내어 식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튀겨준다. 찹쌀풀이 입혀진 부분이 뜨거운 기름을 머금고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튀긴 김부각은 한입 베어물 때마다 파사삭 소리를 낸다. 가끔 과하게 바삭한 조각에 입천장이 벗겨지거나 잇몸이 찔리기도 하지만, 짭짤 고소한 맛에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짭짤한 김부각은 반찬이 되기도 하고 술안주가 되기도 한다. 나는 시원한 물에 찬밥을 말아, 김부각 한 조각씩 곁들여 먹는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 이때 김부각 끝에 고추장을 살짝 찍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생각나지 않는다.
작년 여름, 엄마는 오랜만에 김부각을 만들었다. 정성스럽게 찹쌀풀을 쑤고, 김 한 장 한 장에 얇게 펴 발라주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볕이 아주 잘 드는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김부각을 들고 옥상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풀을 바른 김들을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두고 말려주면 완성이다. 가장 큰 수고로움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쉽고 간단한 음식은 아니다. 베란다에 내놓은 부각들이 행여나 밤이슬을 맞고 축축해질까 싶어, 해가 지기 무섭게 실내로 걷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해가 뜨면 또다시 좋은 볕에 널어주어야 한다. 수고를 감내하면서 만들어진 엄마의 김부각은 비닐봉지에 소분되어 일부는 나에게로, 시골집으로, 이웃집으로 전해졌다.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부각은 다 사라졌지만 , 입안에서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만큼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