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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26. 2022

러닝과 함께 시작된 '나의 해방일지'

내가 달리는 이유2

“언니는 옛날부터 참 꾸준했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오랜만에 만난 대학 후배가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후배는 남들처럼 9 to 6 출퇴근을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 순수한 눈망울에 부끄러움이 울컥 치밀어 올라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러너스 헬스클럽 1기 깃발을 들고 부스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후배가 생각하는 것처럼 꾸준한 사람이 아니다. 틈만 나면 지인들에게 “한 달만 쉬고 싶다” “퇴사하고 싶다”고 말하며 투정을 부린 ‘게으름 대마왕’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신문사 기자로 6년을 일했지만, 일에 즐거움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던 이십 대 초반의 포부는 이미 내 삶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 보니 다니는 회사마다 1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회사 가기 싫어’병은 올봄 새로운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심해졌다. 매일이 새벽 첫 차를 타고 출근해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하는 루틴의 반복이었다.  식사 시간에 끼니를 거르고 일을 해야 겨우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퇴근 후 폭식이 잦아졌다.


쏟아지는 연락과 소식을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다보니 자고 있어도 뇌는 깨어있는 느낌이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몸 어딘가에 쇠고랑을 차고 회사라는 감옥에 얽매인 죄수 같았다. 그 속에서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고장 난 기차가 돼 버린 듯한 착각에 빠졌다. 거의 매일 밤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렸다.

    

섣불리 퇴사를 결정할 순 없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버티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으니까. 여기에서 낙오되면 다시 일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마음속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역사 안을 바삐 걷다가 거울에 비친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북어 눈깔처럼 퀭한 눈빛의 내가 있었다. 얼굴엔 다크서클이 어둡게 깔리고 등은 살짝 굽어있고 양 어깨는 삶은 오징어처럼 말린 모습으로 말이다.     


“사는 동안 살고, 죽는 동안 죽어요. 살 때 죽어 있지 말고 죽을 때 살아있지 마요.”(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중)     


바쁘게 일하며 지내는 게 살아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팔딱여본 지 오래된 어항 속 금붕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동안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무엇을 위한 버텨냄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숨소리를 느끼면서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불타올랐다.      


군대처럼 상명하복이 심하고 타율적인 업무 환경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만드는 그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입사 6개월도 안 되어 사직서를 냈다. 내 인생 여섯 번째 퇴사였다. 직장생활은 누군가에겐 하늘에 뜬 별처럼 가까이 가고 싶은 ‘꿈’이지만, 내겐 그리 낭만적인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지막 근무일은 지난 여름 어느날이었다. 짐을 한가득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길.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축축한 장마의 시작이었다.  


왠지 모르게 하늘이 나 대신 기쁨의 눈물을 흘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어서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비를 맞으며 내달렸다. 옷이 빗물에 흠뻑 젖어 몸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웠다.


‘드디어 해방이다!’

‘내일은 기상 알람을 설정해두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부터는 월요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지루하지 않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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