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압박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자는 생각으로 매일 조금씩 달렸다. 돈이 제일 덜 드는 운동이기도 했고,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으니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엄살을 조금 부리자면, 내 발은 평발에 무지외반증까지 안고 있어 달리기에 매우 취약하다. 지난해 왼쪽 새끼발가락에 금이 가서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닌 후로는 걷는 방법도 잊어버렸다고 생각이 들 정도라 달리기는 엄두도 못냈다. 첫걸음마를 배우는 아기, 자전거를 처음 타는 어린이가 된 마음가짐으로 긴장하면서 발을 움직였다.
처음부터 잘 달릴 욕심은 없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오래 할 수 있는 취미로 만들기로 했다. 한 번에 많은 거리를 뛰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3km, 4km, 5km… 비 오는 날에도 하루 30분이라도 시간이 비면 밖으로 나갔다. 퇴사 날, 달리기가 내게 준 달콤한 해방감을 잊지 않도록 자주 훈련했다.
“발끝에도 힘을 꽉 주고 달려보세요. 발바닥 전체에 힘을 줘야 근육이 골고루 발달해요”
지난해에 만난 헬스 트레이너가 러닝머신을 탈 때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그 말대로 발끝에도 힘을 줬더니 뛰는 폼이 꼭 병정 인형 같다. 얼마 안가 경련이 온 듯 뻐근했다. 반대로 힘을 빼고 별생각 없이 뛰니 발등이 바닥에 스쳐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힘을 너무 줘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예 힘을 빼서도 안 되고. 대체 달리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달리기를 할 때는 기계가 돼야 해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가쁜 숨을 내쉬는 내 옆을 누군가가 스쳐지나가면서 말했다.
“내 몸은 기계다,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막 움직인다. 한번 이렇게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세요.”
러닝크루 멤버들과 러닝 후 음료수를 들고 있는 모습
그는 뛰는 동안 호흡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힘든 게 덜하다고 덧붙이고는 겅중겅중 앞서 나갔다. 조언대로 ‘잘 달려야지’하는 생각을 안 하고 달리는 행위에만 집중을 했더니 한결 편했다.
잘 달리는 방법이 ‘그냥’ 달리는 거였다니!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려움을 느꼈던 직장생활을 잘하는 방법 역시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던대로 그 일을 붙들고 하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