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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27. 2022

"함께 달려야 끝까지 간다"

잘 달리는 법2

업무 처리 스타일을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난 장거리 러너다. 전체가 100이라면, 70의 에너지를 꾸준히 쓰는 ‘길고 오래가는’ 러너다.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대회에서는 최악의 선수이지만, 완주를 목표로 하는 대회에서는 훌륭한 선수다. 따지고 보면 회사가 내 강점을 살리기 어려운 대회였던 셈이다.   

  

우리는 매일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트랙 속에서 마라토너처럼 달리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애써 힘든 것을 참고 종착지에 다다른다고 해도 새로운 대회의 출발점이 나타난다.


쳇바퀴 같은 인생 트랙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러닝크루 멤버들과 압구정 나들목을 달려 통과하는 모습

    

매년 노벨 문학상에 언급되는 작가 서머셋 몸은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며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라고 했다. 속도보다는 꾸준함에 무게를 두면 일을 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생긴다는 말이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자신의 직업인 소설을 쓰는 것을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는 행위에 비유했다. 그만큼 일을 한다는 건 길고 격렬한 싸움이라는 뜻일테다.     


나는 그동안 이 싸움에서 늘 지곤 했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쉽게 휘둘려 쉬는 것을 택했다. 물론 쉬었다가 달려도 되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내게 필요한 것은 ‘힘들어도 계속 나아갈 힘’이었다.      


지난 3개월간 러닝을 하면서 힘들어도 나아갈 힘을 터득해나갔다. 바로 함께 달려준 이들 덕분이다.


러닝 크루 회원들 사이에서 나는 ‘꼬북이’로 통한다. 꼬북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거북이를 형상화하고 있어 느린 러너를 표현하는 말로도 불린다.      


초창기에는 속도 자체도 느리지만 지구력이 부족하다보니 조금만 달려도 손과 종아리가 저려왔다. 시작은 함께 했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앞사람과의 간격은 확연히 벌어졌고 동료들도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감사한 것은 고독한 레이스를 예감할 때마다 누구든 꼭 한 명은 가던 길을 돌아 나에게로 왔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나보다 1m 정도 앞에서 뛰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줬고, 또 다른 이는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주며, 말로 자세를 교정해주며 기운을 북돋아줬다. 가끔 나와 같은 꼬북이 러너들과 달릴 때면 굳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의지가 돼서 든든했다. 달리기 후에 마시는 물 한 잔, 인증 사진 촬영 이런 보상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힘이 됐다. 내가 늦더라도 기다려줄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은 경쟁에 지친 내게 큰 위로였다.      


동료가 힘들어하면 파이팅을 외치고,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주는 행위에서 나는 신세계를 맛봤다. 내 아이디어를 빼앗고, 나를 견제해서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던 ‘직장정글’과는 180도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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