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업계가 놓친 스포츠인재, 정혜란 러너 <1>
정혜란 러너의 마라톤 주요 기록
2022년 11월 jtbc마라톤 풀 - 3:31:17
2023년 3월 서울마라톤 풀 - 3:18:07
2024년 3월 서울마라톤 풀 - 3:14:38
2024년 5월 바다의 날 하프 – 1:28:19
2024년 8월 썸머나이트런 10k - 40:57
2024년 11월 jtbc마라톤 풀 - 3:08:22
2025년 4월 YMCA마라톤 10k – 40:23
러너는 기록으로 말한다. 그런 점에서 정혜란 러너의 이름값은 대회 기록과 8월 러닝 마일리지(그래프) 봐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필자는 정혜란 러너를 러닝크루 '런티풀'을 통해 알고 지냈다. 많은 대화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신비로움이 쌓여 한번쯤 깊은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여름 폭염에 땀흘리며 뛰던 지난 7월 18일, 정 러너가 소탈한 운동복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진한 화장과 함께 화려하게 꾸미고 오겠지 하는 예상을 뒤엎은 일이었다. 의외라고 말하자 정 러너가 배시시 웃으며 찐러너 DNA를 인증했다.
“일상에서 왠만하면 운동복을 입게 되네요”
그에게 필자가 놀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함께 먹자고 제안한 메뉴도 햄버거였다. 육즙 가득한 수제버거에 감튀와 콜라를 주문하는 모습에 “이래도 괜찮냐”고 물으니 “요즘 좀 땡기더라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러너는 평소 음주도 잘 안한다. “예전에 중랑천 인근에 있는 ‘처음처런’이라는 크루에 있었는데 거기서는 뛰고나서 술 많이 마셨어요. 이름 자체도 술 마시려고 작정한 모임 같잖아요(웃음). 그랬는데 거기나오고 이사도 하고 그러면서 환경이 바뀌어 안 마시게 됐죠.”
정 러너에게 올해 상반기 가장 큰 ‘사건’은 3월 열린 동아마라톤이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부상으로 dnf를 했다.
“작년 jtbc마라톤 때도 그렇고 중요한 대회에 부상이 많았네요. 부상 위치가 작년에는 골반 쪽이었고 올해는 아킬레스 쪽이에요. 부상 자체는 동마 전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씩(일주일에 한 번정도)만 뛰다가 대회에 나갔더니 어느 순간 몸이 가버렸더라고요. 병원(한의원)엘 자주 갔죠. 부상 초기에는 매일갔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질러둔(?) 대회가 많으니까 부상이 있어도 다 취소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꾸역꾸역 어떻게든 대회를 나가야지’ 하고 타이레놀의 힘으로 나간 거에요.”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약이랑 에너지부스터 식품 먹고 뛰니까 도파민이 오르지 뭐에요. 그 힘으로 뛰다가 피로하면 조금 절뚝거리고 하면서 뛰었죠. 대회비가 있다 보니까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일단 나간 건데, 그렇게 대회를 나가다 보면 또 최선을 다하게 되요.
정혜란 러너는 최근 하남 종합운동장 트랙에서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마스터즈의 전설, 최진수 감독의 지도를 받는다. 최 감독은 러닝씬에서 다수의 서브(Sub)3 기록 달성은 물론, 많은 아마추어 러너를 Sub3의 세계로 이끌어낸 독보적인 존재로 손꼽힌다. “Sub3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달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불필요한 힘을 덜어내고, 더 여유 있게 달려야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정 러너는 처음 몸담은 러닝크루 ‘처음처런’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운영진 하게 되면서 남들한테 많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다 기억을 해야 되고요. 근데 지나고 나니까 ‘대체 내 사람이 누구지’ 약간 현타가 왔었어요. 활동을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우리가 솔직히 마음 쓰는 게 뭘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진짜 내가 좋아서 한 건데도 뭔가 마음 측면에서 되돌아오는 게 없거나 갑작스레 이별을 하면 그 공허함이 좀 클 것 같아요. 하지만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또 남는 사람도 있었을 거잖아요. 저는 모임에서 한두 사람만 남기면 성공한 거다 이렇게 생각해요.”
평소 러닝씬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디 대회 포디움 가서 고수분들 만나면 ‘나는 그정도는 아니지’ 하면서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편이에요. 러닝을 오래하면 할수록 고수들이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경력이 있어야 잘 뛰는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 최강자인 것 같아요. 전성기라는 게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러닝을 하면 할수록 서로의 경쟁보다는 자신의 싸움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경쟁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덜해요. 남을 적으로 생각하면 수없이 많지만, 과거의 나를 적으로 생각하면 적은 1명이니까요. 결국 제 자신을 이겨야죠. 고수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마라톤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나의 현재를 알게 해주고 목표를 세우게 해서 나를 자꾸 성장시켜 주는 거요. PB를 세우는 등 각자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그 미션을 클리어 할 때마다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으니까 좋아요. 게임 캐릭터처럼 레벨업이 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이상한 게요! 볼링, 롱보드 등 제가 다른 운동도 많이 해봤거든요. 다른 것들은 다 그렇게 흥미가 안 나고 혼자 짧게 해보다가 그만두고 그랬는데 러닝은 뿌듯함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매일 뛰나요?
기본적으론 그렇긴한데 그때그때 달라요. 평일엔 출근 조깅을 5km 정도 합니다. 저녁에는 헬스장 가거나 보강운동을 하거나요. 훈련 없으면 마사지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거나 해요.
대회 나갈 때 루틴은 있나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 사람인가봐요. 대회장에서 지인들 만나고 하는 거 물론 좋은데요. 저 자신한테 집중을 하고 뛰어야 더 잘 뛰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대화를 하면 에너지를 남들한테 쏟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대회장이나 훈련 장소에서 저도 모르게 조용해져요. 혼자서 ‘오늘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요. 대회 나가면 워낙 정신이 없으니까 뭔가를 까먹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더 저한테 집중하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한구석에 혼자 있으면 ‘혜란이가 뭐 집중하나 보다’ 이러고 말 안 시켜요. 누군가는 그런 저를 ‘긴장돼 보인다’고 말하기도 해요. 차마 말을 못 걸더라고요?(웃음) 이걸 일종의 루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달릴 때는요? 어떤 흐름으로 경기를 운영하나요?
초반 1km는 치고 나가는 편이에요. 선두로 치고 나가면 고요하게 달릴 수 있는데, 그게 좋아서요. 중반부부터는 ‘너무 빠르다’ 싶으면 줄여야겠다 하고 속도를 낮춰요. 오히려 후반부를 지속주로 마무리하는 편이에요.
아 그럼 상황에 따라 조율하는 거고 경기 계획을 완전하게 짜는 성향은 아니네요?
맞아요.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다보니 몸 상태나 기분에 따라 달리기 성향이 달라져요. 훈련도 계획적으로 짜거나 하지 않는데요. 많은 러너분들 대화 들어보면 다 계획이 엄청 나신 거에요. 요즘엔 러닝 클래스를 통해서 전문가에게 훈련을 받다보니 체계적으로 인터벌을 하고 있긴 하죠. 근데 성장하려면 계획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대화를 해보니 생각했던 이미지랑 달리 소탈하고 털털하고, 예민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성격이 날카롭고 완벽주의라는 오해를 받았을 것 같은데 독자들에게 해주고픈 말 있을까요?
동의해요. 제가 겉으로는 좀 차가워 보인다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러닝을 하며 만나는 많은 분들은 트랙이나 대회장에서 마주하잖아요. 말수가 적어서 그런지 다가가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대회뿐 아니라 훈련도 진지하게 임하는 편이어서요. 텐션이 다운돼 보이더라도 오해하지 마세요~ ‘이번 훈련도 낙오되면 어떡하지’ ‘낙오 안 되게 잘해야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에요~ 사실은 저 대화도 잘하고 다가가기 편한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