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사나이? '럭키비키' 양희수 ①
다음은 9월 중순, 양희수 러너와 나눈 대화.
"비 오는데 뛰셨네요?"
"저 비 맞는 거 싫어해요. 그래도 한번 뛸 때는 비 맞고도 잘 뛰는 편이죠. 비 온다고 안 뛰고, 더워서 안 뛰고, 춥다고 안 뛰고, 힘들다고 안 뛰면 언제 뛰실 건가요?"
'러너 햄토리' 양희수 러너는 필자와 가민 워치 앱 친구다. 그래서 서로의 러닝 기록을 볼 수 있다. 올 여름, 양 러너의 워치는 비오는 날에도 쉬지 않았다. 폭우가 연속으로 내린 시기에도 그의 우중런 기록이 업뎃됐다. '훈련 하러 트랙을 갈 예정인데 비가 와서 걱정이다'라고 연락이 온 날에도 어김없이 그는 뛰었다.
"원래는 비오거나 눈 오면 잘 안 뛰려고 하는데 뭔가 러닝챌린지를 해야할 때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뛰는 편이에요. 20대에는 그냥 뛰었다면... 30대가 된 후에는 탈모 생각해서 비 맞는 거 싫어하게 됐어요. 그래도 뛰는 이유요? 밥은 맨날 먹으면서 집 주변에 뛸 곳이 없어서 못 뛴다? 다 핑계고 뛰기 귀찮아서 그런거 아닐까요!"
10k 35분 06초
(23년 11월 12일 사이버영토수호)
하프 1시간 16분 54초
(24년 10월 12일 경포마라톤)
풀 2시간 44분 55초
(22년 11월 6일 JTBC마라톤)
100k 12시간 26분 54초
(21년 11월 13일 제주울트라)
그는 한번도 엘리트 선수를 한 적이 없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그런데 마라톤 최고 기록은 준선수급이다. 2017년 3월에 러닝을 시작해 올해로 9년 차 러너가 된 만큼, 입상경력도 화려하다.
19년 09. 01 철원DMZ국제평화 10k 2위
19년 09. 08 공주백제 하프 4위
19년 10. 05 슈퍼블루 하프 1위
23년 09. 10 철원DMZ국제평화 10k 5위
이외에 연대별·동네대회에서 3~5위를 자주 차지했다. 2023년엔 춘천마라톤 공식 SUB3 페이스메이커도 했다. 현재는 러닝 훈련 프로그램인 ‘PAC’에서 서브코치(2~4기)로 활동 중이다.
이렇게 이미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도 양 러너는 아직 성취감에 목마르다. 가정사와 생계 문제로 인한 고난 속에서도 러닝은 포기하지 않았을 만큼 러닝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 ‘이 사람이 힘들 때마다 노래를 불러왔구나’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양 러너는 삶이 힘들수록 러닝에 의지해 왔다.
낮에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번은 서울시체육회쪽에서 콜이 와서 대리운전을 하러 갔어요. 손님한테 체육회에서 근무하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아시안게임 복싱 금메달리스트라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봉주 선수랑 친분 있다는 이야기도 하시길래 저도 마라톤한다고 말했죠. 그분 댁까지 한 40분가까이 걸렸는데 올림픽이랑 아시안게임 이야기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양 러너는 한마디로 자수성가형 러너다. 스포츠 DNA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엘리트 선수를 한 적도 지금껏 한번도 없다. 양 러너의 표현에 따르면 ‘진짜 소심하고 내성적인 남자 애’였다. 그리고 달리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
지금의 모습과 안 어울려요. 러닝을 싫어하는 양희수라니 상상이 안 되요.
못 믿으시니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고등학교 때 남자애들 축구 농구할 때 저는 그냥 운동장에서 여자애들하고 수다 떨었어요. 제가 현재 집에 30년째 살고 있는데, 어릴 때 다닌 초등학교·중학교가 집에서 1km가 채 안 될 정도로 가까웠거든요?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거리가 1.5km였는데, 맨날 버스 타고 다녔어요.
특히 중학교까지가 버스 두 정거장(800m 거리)인데 지각을 많이 했다고.
“중2 때는 지각을 하도 해서 선생님이 ‘지각 1분당 운동장 5바퀴’라는 벌칙을 내려주셨어요. 제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지각쟁이였어서 운동장을 계속 뛰었죠. 나중에는 벌칙이 쌓여서 운동장 200바퀴를 뛰게 된 거에요. 좀 빼달라고 사정해서 20바퀴 도는 걸로 선생님이랑 합의를 봤는데 선생님께 들켜서 혼난 기억이 있네요.”
조금 웃기네요. 그럼 양 러너가 달리기 속도가 빠른 이유가 학창시절에 자주 지각을 했기 때문 아니에요?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급하게 뛰는 인생을 살아왔거든요. 지하철 열차 잡으려고 뛸 때 진짜 1초 차이로 탄 적도 있고 1초 차이로 못탄 적도 있고 그렇잖아요? 늦지 않으려고 맨날 열심히 뛰어 다녔어요.
러너 되고 나서 좋은 게 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거에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인가, (그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던 통학길을) 집까지 한번 걸어가봤거든요. 1.5km를 열심히 걸었는데 20분쯤 걸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뛰어다니니까 신기하죠. 그리고 이런 생각했어요. ‘내가 왜 고등학교 다닐 때 이걸 맨날 버스 타고 다녔지? 버스 기다리는 시간, 버스 정류장마다 내리는 시간 고려하면 내가 더 뛰어서 가는 게 더 빨랐을 건데’
그만큼 그 시절의 저는 달리기와 거리가 멀었던 거에요. 미래에 달리기를 할 거라 생각도 못했고요!
그럼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계기는 뭐에요?
제가 중랑구에 사는데요. 러닝을 시작하기 직전인 20대 중반에 몸무게 80kg가 넘는, 통통한 남자였어요. 당시 구청에서 생활체육 진흥을 시키기 위해 ‘생활체육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마라톤 교실을 열었어요. 러닝뿐 아니라 볼링, 탁구, 배드민턴 등 여러 종목 수업이 있었죠. 중랑구민들 대상으로 신청자 중에 20명 추첨해서 무료로 수업을 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때 러닝을 하게 됐어요.
그전에는 볼링이랑 스쿼시를 배워봤어요. 스쿼시장 안에 조그마한 헬스장이 있는데 스쿼시 끝나고 헬스를 하면서 살을 조금씩 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는 안 빠졌어요.
몸무게가 78~79kg였을 때가 26살 때의 겨울, 그러니까 2016년 12월이었는데요. 인터넷 하다가 동아마라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10km랑 풀코스 두 가지 중에 10km는 거리가 짧게 느껴져서 그냥 풀을 접수한 거에요.
특이한 러닝 이력이네요.
아, 첫 대회로 무작정 풀을 뛴 거 말씀하시는 거에요? 맞아요. 남들은 5km, 10km 대회부터 나가는데 전 첫 대회가 풀코스였어요. 대회비가 5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첫 대회 준비 어떻게 했는지 더 이야기해주세요.
동아마라톤이 3월 달에 열리잖아요? 그즈음까지도 러닝화랑 러닝복이 없었어요. 급하게 쿠팡이랑 티몬에서 5000원짜리 반팔티랑 반바지 하나를 샀죠. 그다음엔 러닝화를 사야 되는데 나이키·뉴발란스 정도만 들어본 정도고 러닝화 브랜드가 뭐 있는지, 마라톤 뛰려면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아예 몰랐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줌 플라이 니트였나, 나이키에서 13만원짜리 형광색 신발을 사서 신었어요.
웃긴 얘기 하나 생각났어요. 지금은 대회 때 싱글렛을 입고 뛰는데요. 그때는 제가 옷을 어떻게 조합해 입어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동아마라톤에서 싱글렛이랑 반팔티를 줬는데 반팔티에 싱글렛을 하나 더 껴입고 반바지도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것을 입었어요.
뛸 때 에너지젤은 드셨나요?
에이, 에너지젤이란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죠. 지금은 제 몸의 일부인 가민 스마트워치도 없었고요. 군인들이 찬다는 ‘카시오’였나. 형광색 불빛 나오는 걸 차고 뛰었어요. 뛸 때 몇 페이스로 뛰는지 측정 안되는 시계라 제 속도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죠. 게다가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지,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없지... 총체적 난국이었죠.
완주는 했나요?
4시간 4분 46초인가. SUB5 기록으로 완주는 했어요. 근데 혼자 대회를 나갔으니까 완주했다고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토닥여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골인해서 서러워서 울었어요. 진짜 눈물이 펑펑 흐르던데요. ‘포카리스웨트’가 포토를 담당했는데 그래도 첫 대회니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1시간 반을 줄을 섰어요. 덕분에 사진 한 장 남겼죠.
짐을 찾으러 가야 되는데 절뚝거리면서 걸었어요. 그 후 아예 걷지를 못했어요. 무릎, 장경인대나 햄스트링 통증이 심해서 정형외과랑 한의원 다 가보고요. 지인이 강남에서 한의원을 하셨는데 갔더니 종아리 안쪽에 근육이 너무 뭉쳤다고 하더라고요. 눈물 흘릴 정도로 고통을 참아가면서 풀어줬죠 뭐.
그랬으면 러닝을 다시 해야지 생각하긴 어려웠을 거 같은데요?
그쵸. 다시는 달리기를 안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4시간 4분’이라는 기록이 너무 아쉬운 거에요. ‘내가 중간에 걸어서 이 기록이 나온 건데 걷지만 않았으면 3시간대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그렇기도 하고 제 기록이 첫 대회 참가 치고는 엄청 빠른 거잖아요? 그래서 도전을 더 해보기로 했어요.
양 러너는 바로 한 달 후인 4월 달, 여의도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와 노원구청장배 10km 대회에 연이어 나갔다. 5월 달엔 중랑구청장배 마라톤 10km에도 참가했다.
“첫 하프기록은 1시간 46분이었어요. 여주 세종대왕 마라톤에 나가서는 입상을 했는데 연대별 기록이었고 1시간 31분인가, 36분인가 그래요. 힘든 데도 한편으로는 나랑 러닝이랑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대회를 매주 주말 나간 시기도 많기에 지금껏 출전한 마라톤 대회만 해도 족히 수백 개는 넘을 것이라고 한다. 몇 년도에 대회를 몇 개 나갔는지, 거리별 대회 수는 몇 개가 되는지 일일이 세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휴식한 적도 없이 SUB3 이하 기량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그야말로 ‘리빙 레전드’다.
저한테 러닝 관련 조언 하나만 해주실 수 있나요?
평소에 러닝 전문가들이 ‘뛰고 나서 폼롤러로 종아리 풀어주세요’ ‘뛰기전에 충분히 몸 푸세요’ ‘스쾃, 런지 자주 해주세요’ 뭐 이런 잔소리 하잖아요? 저는 근육통 있고 너무 힘들고 아파도 그런 기본적인 것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지 강해지고, 그래야 대회 끝나고 풀코스 뛰었을 때의 저처럼 눈물 안 흘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