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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Oct 30. 2022

이 이야기는 끝나야 한다

나약한 내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끝나야 한다. 언젠가는 그만하겠지, 같은 시답잖은 바람 말고 내게는 이젠 그만할 것이란 선언이 필요하다. 살아보려 하면 삶은 구차해진다. 죽음은 너무나 간단하고 쉽다.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그날의 우울로 글을 쓰는 삶은 청산하고 싶어졌다. 구차하게 하나씩 다 게워내더라도 그렇게 내 삶을 살아볼 요량이다. 나는 이미 해묵은 감정을 위해 숱한 날을 보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 마음먹은 이맘때,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짧은 가을이면 충분한 시간이 된다. 이번 가을을 끝으로 정말 끝이다.

한 무리 새떼가 일렁이는 바다의 품, 내 좁은 시야에서는 바다의 한쪽 구석에 모여 내려앉았다. 그 옆으로 다가오는 삐걱이는 배, 그리고 내가 탄 버스는 다리를 건너 달려갔다. 왜 하필 그곳에 앉았나 하는 귀여움에 마스크 속으로 씩 웃었다. 그러게, 왜 하필 나는 그런 감정이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아파했을까. 지나고 보니 영문 모를 만큼 깊이 없는 우울, 네깟게 참 별 것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아파하지 않았을 텐데. 혼자 시름하지 않고 더 빨리 털어냈을 텐데. 왜 하필 나를 만났을까.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만나게 된 사람들. 나를 만나게 된 나의 고양이들.


함께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 생각하면 혼자 써 내려간 글은 외마디 비명이다. 비명은 목을 가로질러가며 찢어댄다.  또 다른 소리를 못 내게 한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나는 이 단계를 넘어설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나를 명명하고 정의하는가에 따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바가 달라진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여태껏 나는 '운동 가야지.' 하고 말하는 보통의 삶을 흉내 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지 않던가. 해야 하는 걸 미루면서 오고 가는 말속의 농담으로 삶에서 요구하는 것을 흘려보내는 것. 나도 보통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대수롭지 않게 나의 건강을 저당 잡고, 빨간 불이 들어온 내 삶을 저지하지 못하고 산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지혜로운 누군가는 챙길 건 다 챙겨가며 그런 농담을 했겠지만, 나는 길게 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돌보지 않았다. 고삐 놓친 말이 달려가는 곳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을 더 큰 불확실성에 던져놓으며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쉽게 나약한 사람임을 자처하고 무기력함에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갈 때면 재판을 받는 죄인 마냥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두려워했다. 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내 삶을 방탕하게 놓아둔 사람에게 떨어지는 처벌, 건강을 잃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속이 다 썩어버렸다고 증거를 제시하면, 나는 항변할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아프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일 다르게 조금씩 아픈 나, 그리고 아픈 곳을 일기장에 줄지어 써 내려갔다. 그러면 역시 내게는 돌아올 곳이 남아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약을 먹고, 내게서 우울이 조금씩 멀어지자 인생이 무료해졌다. 우울은 의외로 외롭지 않다. 각종 부산물을 많이 달고 다닌다. 불안, 불면, 질병, 공포, 절망, 그것에서 발생되는 걱정, 낙담. 이렇게 살뜰하게 사람을 챙긴다. 우울이 떠난 빈자리에는 지독하게도 또다시 우울이 돌아오기 쉽다고 한다. 우울은 장르물이다. 마니아층이 있는.


이 무료함에 우울을 끌어안기보다는 새로운 나를 정의하는 것이 먼저였다. 계속 나약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그렇지 않았다. 아프면 관심을 받는 어린 나이와는 달랐다. 내게는 책임져야 할 시간이 있었다. 그 책임에는 나의 건강이 전제되어야 했다. 이런 이미지 전환을 바랐던 나의 자아는 내가 산 이모티콘에 흔적을 남겨두었었다. 건장하지만 얼굴은 연약한 토끼다. 나는 요즘 말로 '힘을 숨긴 찐따'가 되고 싶었었던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나를 두고 정적인 사람, 감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렇기에 더욱 활동적인 취미를 갖는 것이 좋을 거라고 권유해주셨다. 살벌하게 시간을 다투는 외과 의사 선생님들이 여유로운 바이올린 연주를 즐기시는 것처럼, 조용한 내게는 쇳소리와 땀냄새나는 활동성이 필요했다. 그러자, 경찰이 된 친구가 내게 생일선물로 준 주짓수 도복이 떠올랐다. 주짓수에 필요한 가장 필수적인 것인 도복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맨발로 하는 운동이자, 손으로 도복을 잡게 되는 행위를 통해 발에 자해를 하는 행위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단 얘기를 하셨다.


나에게는 관계가 큰 영향을 끼치는데, 나만 빼고 내 주변에서는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었다. 친애하는 친구의 선물과 가족들의 응원,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바라는 나의 생기, 더 이상 누워있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득근할 결심을 하고야 말았다. 허약한 주인공이 운동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어떤 결심은 새로운 주제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요란하지 않게 먹은 마음으로 체력을 키워 이 슬프고 질리는 이야기의 끝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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