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전 연애는 사이다 전개 같은 건 없이 끝났었다. 늦은 시간 이별을 고하고 집에 들어가는 내가 밤길이 무서워서 친구와 통화를 하자 나를 뒤쫓아왔다. 손에 쥔 유리병을 집어던지며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겨우겨우 돌려보내고 나자, 다음 날엔 집 앞에 편지가, 어느 날은 어두운 골목에서 무작정 나를 기다린다던가, 공동 현관을 뚫고 들어와 내 집 손잡이에 뭔갈 걸어두고 간다던가. 간절했을 그 사람의 마음이 내게는 공포였다.
그 연애의 시작은 흔했다. 나는 그 사람을 정리하려 했고, 그 사람은 설득을 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가 특별히 재미있는 연애는 아니었지만, 연애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호의를 계속해서 받다 보니 그 사람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미운 구석이 있었더라면 그걸 빌미로 헤어졌을 것 같은데, 계속 내게 잘해주다 보니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건 나를 위하지 않은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내가 자해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 질문에, 가족, 남자 친구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상담은 남자 친구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남자 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셨는데, 나는 생활력이 강하고 착한 사람이란 답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이 진심이었을 것 같은데,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먼저 좋아하기 시작한 첫 번째인 남자 친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 연애는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충 만났다는 것도 말씀드렸다.
내가 남자 친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얼굴이 첫 번째인듯 하다. 당연히 사람 속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가. 그런데 남자 친구는 생활력이 강하고 혼자서 무언갈 해보려는 의지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투지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무기력하고 자주 죽고 싶었으므로, 남자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나를 만나게 된 잘못으로 그로부터 5년도 넘게 매일 죽고 싶다는 이야길 들어야 했다.
감성적이고 상상의 나래를 잘 펼치며 우울이 깊은 내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남자 친구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갖은 방법으로 나를 달래줬다. 같이 죽자던가, 부모님께서도 상태의 심각성을 아느냐, 갖은 회유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시집에 글을 몇 편 싣고 나자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시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죽고 싶어 했었는데, 남자 친구는 내게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되도록 둘 순 없다고 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피식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남자 친구는 나를 위해 상시 대기했다. 상담을 받고 나와 미주알고주알, 또 다른 상담가처럼 내 이야기를 또 들어야 했고, 정신과 약을 먹으며 하루 종일 자는 나의 연락을 기다리기도 했다. 늘 내 곁에 있어준 덕분에 가족 외의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장부터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면서 그 사람의 허점을 찾아 헤어지려고 연애를 했다고 말했었다. 사람은 믿을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우리도 언젠간 헤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그런데 남자 친구는 헤어지려고 만나는 사람이 어딨냐며 그 생각을 고쳐주겠다더니 7년에 걸쳐 나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남자 친구가 내 곁을 떠날 일이 생겼을 때 나는 크게 한 번 무너졌다. 내가 이제는 정말로 혼자 있어도 될 것 같아서 나를 잠시 떠난 남자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가 덮어두었던 상처들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올라오는 감정에 나는 또 한 번 불안했지만 내게 기회가 온 것 같았다. 나는 진실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남자 친구가 없는 동안 혼자 좋아하는 카페를 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살리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하셨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것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그리고도 더 많은 선택이 이에 해당됐다. 처음 나를 소개하며 교수님께 연락을 드린 것, 정신과 약을 먹으며 밤에도 불안에 떠는 나를 구한 것, 내 감정을 속에 두지 않고 글로 남긴 것, 이런 나를 사랑하고 또 살아보려 하는 것. 나는 매일 죽어갔지만 매일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다. 서로를 등지고 있어 평생을 눈 마주칠 일 없지만,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동전의 테두리다. 굴곡진 삶을 걸어가느라 희와 비가 반복되지만 더듬어 보면 흠이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재미는 또 다른 동전을 만날 때인데, 붙여놓으면 또 다른 가치로 뛴다. 이렇게 둘을 붙여 놓는 걸 사랑이라고 한다면, 삶에는 사랑이 있어야 더 값지게 된다. 삶에는 사랑으로 채워질 공간이 있다. 테두리의 흠이 그렇고 흠으로 비롯된 비가 그렇다.
상담가들 사이에서는 상담을 받기 위해 문자를 보내는 그 순간부터 상담이 시작된다고들 한다. 문자 한 통으로 시작된 상담, 그리고 새로운 삶. 나의 선택이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된다. 나의 선택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나, 나의 선택이 빚고 있는 알 수 없는 내일,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안다면 애쓰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그래서 생사랑, 생과 사에는 무언가가 있다. 생사랑, 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죽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