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한 글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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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처음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실제, 노동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만나고, 문제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위장취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노동현장에 취직을 하고, 일한 내용들을 노동일지로 정리해서 함께 나누는 모임을 했다. 난 일을 구하지 못했다.(사실, 일을 하기 싫었다.) 엄마가 일하는 고깃집에 일을 구하기는 했지만, 하루만 하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여러 핑계를 둘러대며 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두 명정도가 일을 구하지 못했다. 이들을 위해서 급조된 프로그램으로 비노동인구를 위해서 '찾아가는 캠페인'단이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일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던터라 더 이상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뻤다.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노동일지를 나누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신기해하며 들었다. 노동은 직접하지 않고, 누군가의 노동 이야기를 듣는 것이 힘들지 않고 좋았다.
일을 구하는 것, 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내 삶에서 최대한 '노동'을 제외시키고 살고 싶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도 몇차례 일을 하려고 했다. 오렌지 카운티라는 고기뷔폐에도 일을 했었고, 맥도날드에서도 일을 했다. 애석하게도 두 군데 모두 딱 하루 일하고 그만두었다. 하루 일했는 데도 너무 힘들었고, 이 힘든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의지가 약해서 아르바이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고 누워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 후에 고기뷔폐와 맥도날드는 어떤 누구든 너무 힘든 곳임을 알게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내가 '노조'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노동자, 조합원이 아닌 '활동',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하는 활동은 노동보다는 숭고하고 한 단계 더 높은 것이라 생각했다. 활동은 노동을 조직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니 객관화를 위해서는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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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부유하지 않은 내가 돈을 쓰는 '소비'만 하고 수입은 없었다. 가끔 단기 알바나, 엄마가 주는 약간의 용돈 등으로 겨우겨우 살았다. 극도로 아끼면 '궁상맞게' 살았지만, 돈을 아끼는 것이 일을 하는 것보단 훨씬 좋았다. 하지만 휴학을 하면서 엄마의 용돈도 끊기고 이리저리 손 벌리는 상황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직영 편의점이었고, 6개월 정도를 일했다. 태어나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주5일을 일해서 80만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꼽혔다.' 여러 가지 단체 후원비도 밀리지 않았고, 맛있는 것도 사먹을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 옷도 샀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는 일도 줄어들었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돈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오늘만 살 것 처럼 돈을 썼다. 돈은 늘 부족하기만 했고 핸드폰 깡을 하기도 했다. 욕을 엄청나게 먹고서 소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일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힘들었다. 점장이 함께 일하는 시간이었고, 근무 규정도 까다로웠다. 아무리 더워도 긴바지를 입고, 핸드폰도 절대로 보면 안되고 앉아서 쉬는 것도 허락받은 시간에만 가능했다. 식사는 점장님이 사비로 사주셨지만 점장님과 같이 밥먹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점장은 본인이 매우 '쿨'하고 '진보적'이라고 믿는 남성이었다. 나에게 항상 자신의 '쿨'함을 알리려 노력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년'을 붙여가며 욕을 했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매우 보수적이고 무례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페북을 이용해서 내 페북을 '사찰'하고서는 내가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나 여러 가지 활동을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본인은 젊은 시절에 정의를 위해 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말이 무색하게 내가 실수를 하거나 본인의 기분이 안좋아질 때면 "니 노동법 좋아하잖아! 법대로 할까?"는 식으로 나의 활동을 협박의 도구로 활용했다.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먹고 살아야해서 참았다. 그렇게 6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을 일했다. 좋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내가 일을 하고, 가치를 생산해서 그것을 임금으로 받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왜 권리를 이야기하며 싸우기 힘든지, 그럼에도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했다. '노동'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숭고한 것이었지만, '노동현장'은 나의 자존감을 갈아먹는 잔인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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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때보다 월등하게 좋은 조건의 편의점에서 주말에 일을 한다. 돈은 조금 줄었지만, 법적으로 빈틈없이 지켜지는 권리들이 고맙고 좋다. 이전엔 상상도 못하던 '식대'가 따로 주어지고, 꾸준히 나오는 폐기음식들은 나를 풍요롭게 한다. 1년만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하루하루 더 버티게 한다. 함께 일하는 점장도 없고, 이전처럼 다른일 과 병행하느라 몸이 거덜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어려움은 있다. 손님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갑질을 하고, 돈 계산 실수를 하지 않을까 늘 긴장한다. 높은 곳에 있는 창고를 오르락 내리락 하기 위해서 사다리를 타다가 다치지 않을까 무섭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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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부담이나 두려움은 아니다. 이제는 평생 함께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노동'을 하게 될 것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노동'을 몸으로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있긴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이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겨우 '아르바이트'나 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르바이트'는 잠시 할 것이고 진짜 직장을 찾아서 떠날 것이라는 사람들, '아르바이트 노동'의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서 '아르바이트'라 불리는 초단시간노동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경험을 나누고 몸으로 숭고한'노동'과 머리로 규정하는 잔인한'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어떻게 하면 맞춰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고, 나도 사람을 모을 능력과 여건이 되지않는다. 그래서 일단은 내 생각과 경험들부터 나누고 싶다. 이것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나누고 싶다. 또 다른 목표는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 '편의점 알바'가 '꿀'이나 단순한 바코드만 찍는 일이 아님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선거시즌이 되면 청년들의 고통을 느껴보겠다고 많은 후보들이 편의점에 와서 바코드기를 들고 물건을 찍는다. 사람들이 편의점 노동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 정말로 바코드기만 붙잡고 물건만 찍는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핸드폰을 보거나, 영화나 본다고 비아냥거린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이야기를 하면, 편의점에서 '꿀'을 빨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저런 사람들에게 너무 큰 돈이 주는 것이 부당하는 이야기를 한다. 편의점 알바, 넓게는 아르바이트 노동은 사회적인 임금을 올리는 것을 막는 '인질'이 되었다.
나는 아무리 '꿀'을 빨더라도,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이 주어져야한다고 믿는다. 나의 믿음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알바'가 편의점 노동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다. 나와 우리의 노동,편의점 알바 노동의 '숭고함'을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그리 저급하지도 않다. 숭고하지도, 저급하지도 않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시시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하고 보다 많은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왜 필요하고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매거진에 이런저런 노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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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 삽을 떴으니 시간이 되는 대로 꾸준히 써보겠다.
'숭고하지도 그리 시시하지도 않은 알바 노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