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이 문제고, 좋은 사람들의 만남이 문제다. 와인을 훔치고, 소주를 깨고, 가게에 토를 하고 라면국물을 일반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생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동창회, 간만의 혈족모임이 있는 날이면 가게에도 일이 생긴다.
'먹고 싶은 거 다골라! 오늘 내가 다산다!' 들어오면서 이 말을 외치는 중년들의 등장은 주위의 공기를 싸늘하게 바꾼다. 소주만 십수병, 안주에 과자에 계산하고 봉지에 넣기만 해도 벅차다. 술취한 아재는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이거는 왜 행사안되요 뿌잉'이라고 말한다. 물통으로 머리를 내려찍어버리고 싶지만 웃으면서 다른 상품은 된다고 안내한다. 한고비 넘어 또 한고비. 이번에는 자기가 먹고 싶은 안주가 있다며 왜 이 가게에는 보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저희 가게에는 그 물건은 없습니다 하고 답하면 비뚤어진 표정으로 사라진다.
손에 35000원짜리 보드카를 계산도 안하고 들고 나가려는 모습을 보고 급히 막았다. 계산 안하셨어요. 잔뜩 화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면서 '이거 뭐야'하고 말한다. 뒤에 있는 친구가 죄송합니다 하면서 부랴부랴 계산을 한다. 이들이 물건을 고른자리를 정리하러 돌아다니면 가관이다. 냉장고 앞에는 소주병이 1개 깨져있고, 새우깡은 족발 옆에서 얌전히 잠자고 있다.
주말에만 일을 하니 늘 이 행복한 사람들과 씨름을 하게 된다. 술취해서 몸을 비틀거리며, 욕을 지꺼리는 사람. 자기 집 카드를 계속 내밀며 왜 계산 안해주냐고 소리치는 사람. 서로 계산하겠다며 카드를 5장씩 내미는 손들은 익숙할 지경이다. 그 중에서 가장 돈내기 싫어할 관상을 골라 카드를 꺼내서 꼽는다. 가끔 야매관상학이 성공해서 카드의 주인 표정이 썩으면 성공이다. 짧지만 내가 행복한 순간.
노동자인 나는 한없이 고통스럽지만, 이 공간에 나만 제외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서로 껴안고 뽀뽀도 한다. 이곳이 공공장소였음을 인지하는 사람도 역시 나혼자다. 술냄새 가득한 그들의 뽀뽀가 보기 역하다.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자리에는 물바다가 된 냉동고가 보인다. 아 xx. 짜증난다. 나의 평화가 위협받는다. 마음에는 화가 차오른다.
'안녕히가세요' 인사를 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내보낸다. 안식을 취하려는 찰라 사람이 들어온다. 아까 그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다. 아뿔싸 손에 봉지가 들려있다. 저건 환불이다. 술취해서 이것저것 사놓고 막상 먹으려니 너무 많아서 환불하러 내려왔다. 보나마나 영수증도 없는 눈치다. 영수증을 뽑고 환불할 물건을 일일이 찾아서 지운다. 환불을 하려고 '카드 주시겠어요?'라고 하니 카드가 없단다. 부리나케 행복한 사람은 카드를 가지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환불이 성공하고, 나는 환불한 물건을 제자리에 넣는다. 아이스크림은 반쯤 녹아서 물이 되었지만, 냉동고 맨 밑바닥에 우겨넣는다. 어차피 내가 먹지도 않을테니까.
누군가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분명 현실은 아니다. 저들의 행복은 나의 불행과 정비례한다. 저들이 크게 웃으면 웃을 수록 나는 불행해진다. 저들 중 누군가 기분 좋게 한턱쏘면 내 스트레스는 커진다.
"오늘이 생일이고, 오늘이 잔치인 자들아 들으라. 그대들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요. 그대들의 웃음은 나의 스트레스이니. 그대여 부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사라지라. 제발.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