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물류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여파로 우리 가게 최고 인기 상품인 대선소주가 모두 팔렸다. 좋은데이나 참이슬은 100병도 넘게 남아있지만 대선만 팔리니 놀랍다. 술을 안먹으니 소주의 차이도 잘 모르고 그저 신기할 따름.
앞으로 오는 손님의 9할은 "저기요! 대선 더없어요? ㅠㅠ"라고 하며 나를 수십번도 부를 예정이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네! 하나도 없어요"라고 답해야지. 팔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으니 참 좋다. 영원히 텅텅비어라.
수년된 편의점 알바 노동자로서 냉장고 안이 보일정도로 투명하니 가슴 한 켠이 불편하다. 저 모양이 되면 점장이 욕을 하거나, 손님이 욕을 하기 마련이다. 뭐라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괜히 이상한 물건 채우면 더 욕을 먹을테니 일단은 비워둔다. 별일 없겠지.
가게 사장님이 갑자기 연락와서는 호텔 부페를 사주겠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들었는데. 밥 사준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고마웠어'는 식의 이야기를 계속 하신다. 가게를 정리하려거나, 나를 자르려는 수작은 아닐까. 가게 적자가 심해서 식대도 사라진 판국인데 내 일자리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일단, 내 돈으로는 죽어도 못 가볼 음식 사준다고하니 가서 맛있게 먹자. 자르면 다른 일 구해야지 뭐. 별 수 없다. 마음이 불안해지니 할 일도 없는데 괜히 걸레로 바닥만 문지르게 된다. 아무리 잘해줘도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나의 권력차는 명확하다. 스스로 기게 되는 내 모습이야 말로 노골적인 권력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