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
편의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나다.
편의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손님이 아니다. 그 일을 하는 나 자신이다. 손님이 진상을 부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진상 손님이 없는 날이 더 많다. 화는 나고 짜증은 생긴다. 손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내 마음의 문제다.
물건을 산더미처럼 사오는 손님을 보면 화가 난다. 저 물건이 빠진 자리에 물건을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귀찮다. 피곤하다. 그런 일을 하라고 월급을 받는다. 하기 싫다. 손님에게 괜한 화풀이를 한다. 봉투값을 미리 안 물어봐서 당황하게 한다거나, 한봉지에 물건을 우겨넣어서 들기 힘들게 만든다. 이런 내 마음이 쓰레기 같고 싫지만 당장의 기분을 풀기 위해 비겁한 짓을 한다.
한편으로는 저 손님을 욕할 합리적 이유를 찾고 있다. 그런 이유는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물건을 많이 사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도덕적으로도 나쁜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장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큰 소리를 내는 커플이나 남성들, 가족들이 들어와서 몇 십분이나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고르는 경우에는 좀 낫다. 이들은 진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나에게 위압감을 주고 영업을 방해한다. 저들은 명백히 나에게 피해를 주고있다. 나는 이제 정당한 혐오를 할 수 있다.
혐오는 가장 약한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나보다 작고 약해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감정이 올라온다. 아이 두명이 가게로 들어온다. 컵라면 한개 쿨피스 1개사고 온 가게를 뛰어다닌다. 시식대를 엉망으로 만든다. 정말 싫다. 그들에게 위협을 가해서 내보내고 싶다. 목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꽂힌다. 짜증이 난다.
한번 생겨난 혐오의 마음은 지속된다. 담배사는 사람이 담배피다 죽었으면 좋겠고, 소주20병사는 사람은 술먹다가 급사했으면 한다. 전화받으면서 20분째 가게를 돌면서 물건만 고르는 사람은 그냥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포스기에 20분째 갇혀있다.
혐오할 이유가 없으면 만들기도 한다. '저 놈은 나한테 왜 술 안먹냐고 욕할 것이 분명해' '이 놈은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하겠지?' 등 내 마음의 소리를 손님의 소리로 전환해서 근거를 만든다.
이런 상황이 하루에 몇번씩 반복된다. 내가 지키려고 애써왔던 보편적 인권, 차별받지 않는 사회에 대한 모든 것이 이 작은 사각형의 가게 안에서 박살난다. 밑바닥까지 가루가 된다. 일이 끝나고 평일에 인권이 뭐니 이야기하고 다니는 나를 보면 가증스럽다. 주말에 일하는 나와 평일에 활동하는 나는 동일인인가.
마지막까지 이해하고 참아보려는 내가 있다. 그리고 나의 귀찮음, 불안 ,위협에 발맞추기 위해 사회적 통념을 동원해서 혐오를 일삼는 내가 있다. 이 둘은 일하는 내내 싸운다. 혐오가 올라오면 그런 생각은 안된다며 이해하려는 내가 막아선다. 손님의 등장이 계속 되면 이해하려는 나는 무너지고 혐오하는 내가 승리한다. 그 뒤로는 무아지경으로 혐오에 빠진다.
혐오를 안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혐오가 0에 수렴하지 않는다. 혐오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하는 것인지 혐오를 막아내는 자아로 진압을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법륜스님은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쓰레기 버리듯이 던져버리라고 했다. 나에게 그런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