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라이트한 세계 너머로 3

편집자와의 협업

by 정시체

모든 책의 이면에는 늘 편집자가 있다. 편집자란 말 그대로 저자나 역자가 쓴 글을 편집하는 사람이다. 잘은 모르지만, 편집 정도나 방식은 편집자마다 다른 것 같다. 편집자가 속한 출판사의 방침이나 도서 분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라이트노벨에도 편집자가 있었다. 그런데 문장이나 문단을 크게 뜯어고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탈자, 맞춤법, 비문을 바로잡는 선에서만 편집했으니 실질적으로 글을 매끄럽게 다듬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번역을 하는 나도 원문 개입에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작가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할 뿐,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더 넓은 시야에서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저 한 단어, 한 구절을 얼마나 원문과 근접한 표현으로 옮길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그러면서 원문에 충실한 우리말로 옮겼다고 자부했다.


라이트노벨에서 인문교양서, 자기계발서로 분야로 건너갔을 때, 편집 정도와 방식이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새로 호흡을 맞추게 된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적극적으로 번역문에 개입했다. 문장 하나를 완전히 고쳐 쓰기도 했는데, 거기서 원문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바뀐 부분의 원문을 보면 확실히 원문 자체가 말이 잘 안 되고 의미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헤아려서 분명히 드러내는 편이 읽기에는 더 편했다. 문장을 합치거나 나누고, 순서를 바꾸는 경우는 훨씬 더 많았다. 원문에 없는 접속사나 부사를 넣기도 했다. 대체로 편집된 쪽이 더 매끄럽게 읽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가로서 원문의 문장을 바꾼다거나 원문에 없는 단어를 넣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너무 원문에 끌려다니며 소극적으로 번역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물론 소설은 엄연히 예술성을 띤 문학 작품이라 너무 과감하게 번역하기는 꺼려진다. 번역된 소설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번역체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도 꽤 있을 것이다. 라이트노벨은 조금 더 특수하다. 일본 문화에 우호적이고 관심이 많은 매니아들이 주로 읽기 때문에, 너무 한국적으로 고치면 오히려 반발을 살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국과 일본은 서술의 감각이 다르므로, 글의 흐름을 파악해서 문장을 적절히 끊고 잇는 일쯤은 적극적으로 하면 좋았을 것이다. 또 일본어 글 특유의 습관적인 추임새, 접속사와 부사를 덜어내고 다른 말로 대체하면 좋았을 것이다.


비문학 분야는 확실이 개입이 필요하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서 번역할 때 단어만 일대일로 옮기면 될 것 같지만, 글의 호흡이나 화법이 사뭇 달라서 전체적으로 흐름을 잡아 주지 않으면 한국어로 옮겼을 때 잘 읽히지 않는다. 한국어만큼 고맥락 언어라서 말의 앞뒤가 생략된 경우도 많다. 한국어로는 그렇게 써 놓으면 절대 알아들을 수 없다. 원문을 읽을 때는 쓱 읽혔던 부분이, 희한하게 한국어로 바꿔 놓으면 이상하다. 번역 직후에는 알 수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 읽어 보면 확실히 눈에 띈다. 그래서 속뜻을 파악해서 적당히 내용을 덧붙여줘야 할 때가 많다.


반대로 빼야 하는 것도 있다. 한없이 길게 늘어지는 종결 어미는 살릴 필요가 없다,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은 가급적 다른 표현으로 바꾼다. 일본 자기계발서에는 이런 부분이 곳곳에서 속출하는데,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부드럽고 완곡하게 여러 번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늘어지고 반복되는 부분은 편집 대상 일 순위다. 일본어를 모르는 편집자가 봤을 때 가장 거슬리는 부분임을, 나도 적극적인 편집자를 만나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은 원문의 뜻을 살리면서 읽기에도 나쁘지 않은 번역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원문의 언어에 능숙하지 못한 편집자가 고스란히 그 일을 떠맡게 된다. 그러면 한국어로 읽기에는 매끄러워도 원문과는 다소 동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대한 방향을 잡아 준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편집자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가독성이 떨어져서 번역의 질이 낮아 보이고, 좋은 책을 만드는 데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읽기 나쁘고 문장이 조잡하면 원문 그대로 번역했다고 변명해 봤자 소용이 없다. 누구의 영역인지 따지고 있을 수 없다. 출판은 편집자와의 협업이다.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편집할 수 있도록 역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배려를 한다. 번역을 하며 찾은 정보도 편집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전부 링크를 걸고 메모를 남긴다.


역자 교정(편집자가 한 번 교정을 마친 원고를 역자가 검토하는 일) 단계에서는 항상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여러 번 읽고 번역을 마친 원고를 다시 한 번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한 번역에 어떤 수정이 얼마나 가해졌는지 확인하다 보면 절대 짜증을 낼 수 없다. 죄송한 마음으로 숙연하게, 돌아온 원고를 검토한다. 사실 편집자의 첨삭(?)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다. 남이 쓴 글을 정성껏 읽고 비판하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책으로 출간할 원고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우리말 코칭을 일대일로 날카롭게 받을 일은 거의 없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번역도 나중에 다시 보면 실은 별로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모든 작품이 내 손을 거쳐 썩 괜찮은 모습으로 한국 독자에게 소개되면 좋겠지만, 사실 나는 매 순간 미완인 채로 작품을 통해 배운다. 그렇기에 더더욱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 반드시 좋은 편집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실감하고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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