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대로 아침이 올까 두려웠던 밤들. 밤하늘만큼이나 어두웠던 마음은 어느새 바뀌어 가고 있었어요. 조금 밝게, 대범하게.
‘내일의 고통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 매를 맞더라도 내일 맞는 거잖아. 지금은 자는 거야. 푹.’
다음 날이 되어도 여전히 빚 독촉 전화는 울려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작은 틈이 생겼어요. 숨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틈서리였죠.
그 틈은 '호오포노포노' 덕분에 조금 더 넓어졌어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네 문장을 녹음해서 벨소리로 바꿨거든요.
그랬더니 전화가 와도 한결 마음이 편한 거예요.
닦달하는 게 아니라 다독여주는 것처럼 들렸어요. “내놔, 내놔”가 아니라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의 소음이 잦아들자, 자연스레 새로운 선택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한 일은 몸체와 밑창이 분리되는 특허받은 구두 브랜드를 정리하는 거였어요.
흥미로운 기술이지만 완성도가 좀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파는 내내 불안했어요. 뭔가 미완성된 걸 팔고 있다는 찝찝함때문에요.
그 불안감은 저를 더 바쁘게 만들었어요. 노력을 안 해서 불안한 거라고, 시간이 남으니까 불안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게 만들었죠. 진짜 문제는 덮어두고 제 몸과 마음만 달달 볶았던 거예요.
하지만 마음을 돌보며 속도를 늦추자 '그게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어요. 내가 전하는 가치에 대한 확신. 그게 없으면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사업이 잘될 리도 없으니까요.
"이 마음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고, 과감히 브랜드를 정리하기로 했어요.
돈이 없었기에 홈페이지 제작부터 제품 촬영, 인스타그램 관리까지 전부 직접 해야만 했어요.
몸은 고됐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딱 제가 원하는 느낌 그대로를 표현하는 게 정말 재밌었거든요. '세련된 섬세함'. 바로 이 느낌을 보여주는데 푹 빠졌어요.
당시 성수동 수제화 씬에는 유튜브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어요. “어떤 유튜버가 제품을 소개해줬더니 죽어가던 공장까지 살아났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그리고 그 주인공은 제 지인이었어요.
사무실이 근처여서 자주 만나던 대표였거든요. 수제화 시장 전체가 침체여서 서로 응원해 주던 사이였어요. 그 대표가 대박이 난 거예요.
오랜만에 만나 자초지종을 듣자니 얼마나 부럽던지요. 예전 같았으면 조급함이 몰려왔을 텐데, 그날은 왠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몰라. 내게 일어날 일을 이 친구가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 그랬더니 진심으로 축하해 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어요. 당장 큰 유튜버에게 줄 협찬비는 없었지만, 우연히 막 시작한 유튜버가 눈에 띄었거든요. 구독자는 적었지만 재치 있는 입담이 매력적이라 '이 사람이다' 싶었어요. 그쪽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줬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유튜버가 난처한 부탁을 해왔어요.
"대표님, 제품을 오늘 저녁에 받아볼 수 있을까요? 촬영 스케줄이 갑자기 잡혀서요."
수제화라 재고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거절하려던 찰나, 책상 위에 놓인 부츠 한 켤레가 보였어요. 바로 오늘 출고해야 할 고객님 구두였죠. 이미 2주를 기다리셨기에 더 기다려 달라고 하기가 정말 죄송했어요. 머리는 배송일을 지키라 했고, 마음은 유튜버에게 보내라 했죠.
결국, 머리 대신 마음의 직관을 따르기로 했어요. 고객님께 간곡히 양해를 구했고, 다행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어요. 그렇게 신발은 퀵으로 유튜버에게 전달되었어요.
대단한 전략도, 치밀한 계산도 없었어요.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작은 선택들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며칠 후인 11월 19일. 기억하시나요? 제가 두 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던 '행부 부활절' 사건.
네, 맞아요. 해킹당한 것처럼 쉴 새 없이 울리던 주문 알림은, 제가 쏘아 보낸 '작은 구두'가 불러온 거대한 파도였어요. 머리로만 계산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 선택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셈이죠.
독자 여러분. 제 경험은 운이 좋아서였을까요? 물론 운이 정말 좋았어요. 적절한 타이밍에 운의 바람이 불어줬으니까요. 하지만 바람을 탈 수 있었던 건, 돛을 올린 덕분이었어요. 늘 하던 선택이 아닌 새로운 선택, 이성이 아닌 직관의 목소리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믿어요.
혹시 지금 머리는 "안 돼"라고 하는데 가슴은 "해봐"라고 속삭이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한 번쯤은 그 엉뚱한 목소리를 믿어보세요. 거기에 여러분이 기다리던 기적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신이 한 발을 내디딜 때, 길은 그때 비로소 나타난다.
_파울로 코엘료
다음 이야기 예고
어느새 매출은 점점 늘어 법인 사업자가 되었어요. 그 외엔 달라진 게 없었죠. 사회가 말하던 성공의 문턱에서 느꼈던 의외의 감정과 깨달음, 그리고 이 기적을 '스쳐 간 행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했던 일들을 말씀드려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