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딜레마의 끝
아주 어렸을적부터(거의 10년전..?) 난 기분이 좋은 날 다음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 다음에는 기분이 좋았고.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렇다.
뭐 인생이 다 그런거 아니겠냐고 하지만, 난 이 공식과 같은 삶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이틀에 한번씩은 불안에 떨며 살아온지 10년이 되었다. 기분이 이상하게 좋은 날, 유난히 행복한 날, 혹은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난 날은 난 불안에 떤다. 그다음날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일거니까.
효리네 민박 시즌1에 아이유가 나와서 한말이 있다. 스스로 기분이 너무 올라갔다 싶으면 평정심을 되찾으려는 강박이 있다고. 그말의 의미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도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기분이 좋아도 마음껏 좋아하기가 어려웠다. 다음날은 우울할 것 같아서. 이 딜레마의 한가지 순기능은 우울한 날을 견딜 힘을 준다는 것이다. 난 다음날 괜찮을거니까.
20대 초반부터 이러한 딜레마에 갇혀 살아온 나는, 어느순간부터 내 이런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찬찬히 돌이켜보고, 그 뿌리 자체를 뽑아버리고 다시 새로운 프레임을 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고, 고쳐오려고 노력했다.
하루의 기분을 좋고 나쁨으로 단순화시키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 ‘뿌리 뽑기’의 첫걸음이었다. 수많은 사건과 순간들이 겹쳐져 오늘을 이루는데, 그 겹쳐진 수많은 감정들 중 가장 강렬했던 순간만을 뽑아서 그날을 단정짓는 것은 오류라는 것을 발견했다.
1분 1초가 매순간 기분이 안좋았다면, 난 단 한순간도 웃을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웃었던 순간이 1초는 있을 것이다. 단지 울었던 5분의 순간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난 그날의 기분에 우울함이라는 태그를 붙였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전래동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 두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은 나막신을 파는 아들이 걱정되어서, 맑은 날에는 우산을 파는 아들이 걱정되어 매일을 불안에 시달렸는데, 생각을 달리해서 매일 걱정을 덜수 있었다는 이야기.
부모의 입장에서 당연히 나막신을 파는 아들이 걱정되겠지만, 우산을 파는 아들은 잘되고 있을테니 그것 또한 그날의 기분일 것이다.
복합적인 그날의 나를 단순화해서 한가지의 이미지로 정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이 오류를 직시하고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 한가지 더, 끝없이 반례를 찾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어제 기분아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또 기분이 안좋았다면, 너무나 명확한 반례가 생겨나는거니까. 오늘 기분이 좋았으면, 내일도 기분 좋은 일이 생겨날 수 있는거니까.
무엇보다, 내 기분은 어떻게 바뀔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통제할수있다는걸 인지하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라는건 바뀌지 않지만, 그날의 날씨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건 나의 몫이니까.
생각을 뿌리뽑는다는 것도 재활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몸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꾸준한 재활운동이 필요하듯이, 내 마음의 근육도 끝없이 길들여진 원래의 방식을 고치고, 바꿔서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10년이 넘도록 나를 괴롭혀 온 이 딜레마를 뿌리 뽑는다는것은 실체가 없는 활동이기에 더욱 노력이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나를 가두었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그 기분에 잠식되었을때 순간적으로 가라앉는건 아직 내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올라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는건 분명히 느껴진다.
오늘도 내 기분을 걱정했고, 아직도 내일은 ‘기분이 나쁘지 않길’ 내가 아닌 어딘가에 바라고 있지만, 내일의 기분은 내가 결정할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