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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임팩트 무브먼트 2019
06화
가장 완벽한브랜드, 파타고니아
by
SeeREAL Life
May 20. 2019
아래로
intro
#1.
올바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이익도 창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이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자신의 비즈니스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필자 역시 가슴이 뜨끈뜨끈 할 때
소셜벤쳐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
올바른 일을 하면서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이 로맨틱한 목표를 갖고
하지만 기업운영이란
생존을 담보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되면서
소셜미션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기업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상쇄시켜야 가능한 매커니즘이구나를
깨닫는 순간
정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낙담했던 시절도 있었다.
#2.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1년을 벼르며
물건을 사재킬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은
뉴욕타임즈에 올라온 카피라이팅으로 보곤
충격에 빠지게 된다.
[DON'T BUY THIS JACKET]
10년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파타고니아의 친환경 제품 역시
제조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유발되므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재킷을 사지 말라는 파타고니아의 메세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지속가능한 브랜딩의 좋은 예"
"최고의 캠페인이다"라는
극찬을 이어 갔고
파타고니아 매출은
아이러니하게도 증가하게 된다.
당시 나는 이 광고를
노이즈마케팅으로 치부했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위선자 집단이라고 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파타고니아를 파면 팔수록
정말 이상하고도 희안한 기업의 행보를
마주하게 됐다.
#3.
친환경 원재료에 대한 타협없는 고집
공정하고 투명하게 드러낸 공정과정
산업의 관례를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의지
무엇보다 파도가 좋으면
중요한 미팅도 미뤄두곤
전직원이 서핑하러 간다는 이상한 회사.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자본주의에 꽃 "소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라고 역설했고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는
필요없는 소비를 줄이고
환경 파괴를 막는 비즈니스 생태계로
지구를 지켜나가자고 한다.
같은 세기를 살면서
바로 그 대척점으로
다른 삶의 철학을 설파했던 그들을 보며
21세기 기업의 생존이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가장 완벽한 브랜드로 손꼽히는 파타고니아
그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며
자신의 철학을 심어나가고 있는 걸까?
Brand Story_1
[Social Mission의 발견]
#1.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쪽 끝에 자리한
트레킹 성지로
거대한 안데스 산맥과 대지를 일컫는다.
항해사
마
젤란이
2m가 넘는 원주민을 보곤
거인을 뜻하는 포루투칼어 파타곤(patagon)에서
비롯된
파타고니아는
영국 탐험가 에릭 시프턴(Eric Shipton) 역시
이곳을 '폭풍우의 대지'라 부를 정도로
척박한 기후를 뽐낸다.
거센바람과 거친환경 뿐만 아니라
남극, 그린란드에 이어
가장 많은 빙하를 보유한 이 곳.
#2.
파타고니아의 상징이자
상어이빨이라고 불리우는
피츠로이 산군 Fitz Roy을 본따
기업의 로고를 만든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르는
거친 환경도 견뎌 낼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브랜드명을 "파타고니아"로 정한다.
사실, 그는 의류를 만드는 사람이기보다
산을 사랑하는 등반가였고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모험가였다.
그랬기에 파타고니아를 설립하기 전
그는 자신이 필요한 등반장비를
대장장이처럼 손수 제작하는 것을 즐겼고
그 퀄리티는 등반가들의 입소문을 타
결국 판매에까지 이르게 된다.
#3.
어찌보면 판매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설펐다.
장비 몇 개를 주고 밥값을 받는 정도였으니
1938년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주에서 태어난 그는
18살부터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다니며
낡은 중고차 트렁크에서 장비거래를 시작한다.
당시에는 제대로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클라이머들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여 만든
이본 쉬나르의 장비들은
등반 애호가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이어갈 무렵
징집통지서가 날아왔고
1963년 주한미군으로 파견된다
한국행에 오르게 된 것이다.
#4.
학교도 좋아하지 않아
어릴때부터 요세미티공원에서
야영을 즐겼다는 그.
군대는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그것도 타지에서 보내는
흐르지 않는 시간이.
하지만 부대 주변에 있던 북한산은
그의 숨통이
되어주었고
한국인 등반가 친구들과
한국 클라
이밍 성지로 불리는 인수봉에 오르며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엔 본래의 기질을 발휘하여
인수봉
의 새로운 등반로를 개척한다.
그것도 장비없이 등반할 수 있는
177m의 암벽등반로를
이후 "쉬나드A, B루트"라고 이름까지 갖게 된
이 암벽등반로는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쉬나드와 등반친구들, 사진기사는 선우중옥
#5.
군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chouinard Equipment]를 세우고
1964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항공공학자였던 톰 프로스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장비의 상업적 생산을 시작한 것.
[쉬나드이큅먼트]를 시작할 당시 미국은
말 그대로 클라이밍산업의 활황을
이어가고 있었다.
또한, 쉬나르의 노하우가 담긴 장비들은
등반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기에
[쉬나드이큅먼트]는 6년도 채 안되어
미국에서 가장 큰 등반 장비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
* 사족 :
함께 쉬나
드 루트를 개척한 친구 중에는
한국암벽등반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선우중옥"이 있었다.
인수봉 클라이밍으로 맺은 인연은
장비감독관 초빙으로 이어 졌고
그는 쉬나드이큅먼트가 있는
미국 벤츄라로 이주하게 된다.
선우중옥의 아내 역시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상품 중에 하나인
"스탠드업 쇼츠"라는 반바지의
첫 상품을
직접 바느질 했다고.
#6.
1970년대 초 [쉬나드 이큅먼트]의 연매출은
40만 달러에 육박하게 된다.
강도와 품질이 뛰어난 그의 장비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고퀄리티로
클라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제품력이 뒤어났던 피톤은
가장 인기있는 주력제품이었다.
....
*피톤 :
암석에 못처럼 망치로 박아
크라이밍 로프나 중간지지물을
연결시키는 금속 못으로
한번 쓰면 버려지는 소모품이었다.
14살부터 클라이밍을 즐겨온 쉬나드 역시
주말마다 암벽을 찾곤 했는데
어느 날 클라이밍을 즐기던 중
형편없이 훼손된 바위를 발견하게 된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암벽을 오를 때 사용되는 쇠못인 '피톤' 때문.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잦은 피톤질은 결국 바위를
처참하게 망가트렸다.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제품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을 망가트리는 걸
직접 눈으로 목격한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업가로서
큰 결정을 한다
즉시
,
피톤생산을 중단
한 것이다.
#7.
쉬나
드 이킵먼트의 주력사업 이었던
피톤사업에서 철수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의사결정이었다.
매출 역시 급락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쉬나
드는
사업을 철수하는데서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망치만 치지 않아도
훼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판단한 그는
손으로도 암벽의 사이에
끼워 넣거나 제거할 수 있는
[알루미늄 클립]을 대안으로 개발한다.
특히, 1974년에는 제품카탈로그에
피톤대신 ‘헥센트릭스’와 ‘스토퍼’라는 이름의
[알루미늄 클립]을 실고
유명 등반가 로빈슨의
‘피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14페이지짜리 에세이도 함께 게재하여
바위를 원형대로 유지하면서 클라이밍을 즐기는
[Clean Climbing 캠페인]
으로
훼손 제로의 클라이밍
활동을 전개한다.
물론, 피톤의 매출은 바닥을 쳤다.
하지만 Clean Climbing 캠페인과 함께
알루미늄 클립은 불티나게 팔려갔다.
환경훼손을 바꾸고자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던
쉬나
드의 진정성 있는 행보는
자연을 사랑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다.
#8.
환경훼손의 문제점 인식
해결대안 제시
자연훼손 최소화와 함께
더 건강히 등반을 즐기는 성숙한 문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실행하자
더 나은 사업기회를 얻었다
강조한 그는
알루미늄 클립의 성공을 계기로
친환경기업으로의 대대적 전환을 선언한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이 결심은
자연을 훼손하는 제품 생산은 용납되지 않았고
죽어버린 지구에서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쉬나
드의 경영철학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파타고니아는 시작된 것이다.
#9.
1973년 쉬나
드이큅먼트의 자회사로
미국 벤추라의 버려진 한 정육가공창고에서
시작된 파타고니아는
서핑, 스키, 등산으로 아웃도어 시장을 확대하였고
특히, 산악활동을 위한 의류산업에 집중한다.
자연을 최대한 덜 해치는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브랜딩을 최우선으로
제품의 기능성과 관리의 용이성
그리고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체크하여
양질의 의류를 제작했던 파타고니아는
1980년 중반
런칭 이후 5년만에
2천만 달러에서 1억달러로 매출이
치솟
는다.
하지만 1988년
파타고니아는 또 한번의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보스턴에 새 매장을 연 지 얼마 안 돼
직원들이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
알고보니 환기 시스템의 결함으로
제품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가
배출되지 않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있던 직원들은
그 물질을 다 들여 마
셔야 했던 것이다.
[Continue. 브랜드텔링+2]
...
스토리텔링 : [See REAL] +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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