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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하기

by 이직요정

처음 캐나다행을 정하고 나서 코엑스에서 열린 유학/이민 박람회를 다녀왔다.

캐나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서(심지어 캐나다 수도가 토론토인 줄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정보도 없이 이런저런 정보를 두루두루 얻을 목적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상담을 받아보는데, 일단 부모가 워홀로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 보니 보통 [부모의 유학 + 자녀 무상교육] 플랜을 다루는 유학원에서는 나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은 곳이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유학원이었다. 우선 가장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시기도 했고, 듣다 보니 오타와도 심심하니(?) 살기 좋은 곳 같았다. 무엇보다 '토론토에서 원룸 살 돈으로 오타와에선 주택에 살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었다. 그렇게 오타와로 나의 목적지가 정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연이 닿은 유학원에 모든 것을 일임하고 나는 유학원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둘 뿐, 딱히 뭘 더 알아보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출국 시점도 유학원이 조금 한가해진다는 시기인 10월로 맞췄다. 내 인생을 남의 손에만 맡겨둔다니, 출국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도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싶었다. 비행기 타고 10시간도 넘게 걸리는, 시차도 정 반대인 먼 나라로 가게 됐으면서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다니!


캐나다 내에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집 하나 보는 데에도 요구하는 서류는 하나씩 늘어갔다. 처음엔 나의 재정 증명서와 3년간의 소득 증명서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부모님의 소득 증명서와 재정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을 땐, '집을 구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하는 현타가 왔다. 출국일은 다가오는데 집주인들이 집을 안 보여준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없이 공용 세탁기를 써야 하는 월세 230만 원짜리 40년 된 아파트 1층에 살게 생겼다. 내 주택의 꿈은 어디로 갔나.


답답한 마음에 캐나다 캘거리에 살고 있는 대학 때 친구에게 캘거리도 집 구하기가 이렇게 힘드냐고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친구는 이미 캐나다 10년 차에 영주권도 땄고 집도 샀는데 당연히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그걸 생각 못 하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말에 캘거리 쪽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집을 알아볼 때 사용한 사이트


친구도 찾아봤는지 자기가 살고 있는 빌라 바로 아래층이 마침 비었다고 했다. 게다가 시세보다 40만 원 정도가 싸게 나왔다고. 내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미 친구가 구입한 집(=검증됨) + 시세보다 싸게 나옴 + 주변에 학교 5개 + 큰 식료품점 및 은행 2개 도보 7분 + 공항에서 차로 20분 + 한국 직항!!!


약간 걸렸던 건 다운타운(아마 미래의 내 직장이 있을 곳)까지 버스로 50분 정도 걸린다는 거였는데, 한국에서 출퇴근하던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사이트에 등록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이제 주택이고 뭐고 집을 구하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10월 3일에 한국에서 캐나다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저는 오픈 워크 퍼밋을 가지고 있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와 함께 최소 2년 동안 캐나다에 머물 계획입니다. 제 친구가 이 집 위층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집을 직접 보지 않아도 괜찮고 가능하다면 임대 계약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현재 캐나다에서 직장은 없지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있습니다. 저의 소득 증빙 서류와 재정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주인에게서 답장은 금방 왔다.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캐나다에서 친구의 신분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친구를 보증인으로 공동 서명자로 둘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충분한 자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정 증명서는 물론, 자기소개와 이력서까지 첨부해가며 회신을 보냈다.


제 친구는 캐나다 영주권자입니다. 그는 공동 서명자는 될 수 없지만 추천인으로 도울 수는 있습니다. 저는 아직 캐나다에 입국하지 않았고 전화번호도 없으므로 제 대신 친구에게 연락해도 됩니다.

<참조> (친구 이름/전화번호/이메일)

아, 제 소개를 좀 더 일찍 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풀스택 웹 개발자로 7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중국, 대만 및 기타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최근에 저는 아이와 함께 대만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곳의 집주인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제가 좋은 세입자였기 때문에 떠날 때 새로운 세입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제 친구는 공동 서명자가 될 수 없지만(그리고 저는 집을 구하고 싶지만 친구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건 너무 과분한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보지 않은 사람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할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당장 일자리를 구할 수 없더라도 임대료를 내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제 재정 문서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링크)

또한 제 LinkedIn 프로필을 공유합니다.
(링크)


이렇게 구구절절 간절하게 보냈는데, 며칠이 지나도 회신이 없기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혹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봐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친구는 흔쾌히 도와주마 했다. 얼마 후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놀라운 이야기는 하늘이 나의 캐나다행을 도와주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친구가 집주인과 통화를 하는데 집주인의 영어가 서툴고 메신저에 뜬 이름에서는 중국 느낌이 물씬 나길래 혹시 중국인이냐고 물어봤고, 예상대로 중국인이었으며, 둘은 중국어로 신나게(?) 대화를 했다고 한다.

(* 나는 12년 전 중국에서 유학을 했었고, 캐나다 생활 10년 차인 이 친구(=한국인)도 유학 시절 알게 된 친구다. 그래서 둘 다 중국어를 할 줄 안다.)


집주인은 친구에게 내가 6개월 치 월세를 미리 낸다면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집주인의 메신저를 추가해서 직접 대화를 이어나갔다. 집주인은 친구와 나 둘 다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고, 우린 계약에 앞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중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다닌 학교를 말하게 됐는데, 집주인은 그 옆 학교를 나왔다며 무척 반가워 했다. 일단 그 넓은 중국에서 같은 지역인 것도 소름이었는데, 집주인이 학교 이름을 말하는 순간 친구가 나온 학교여서 진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둘이 동문이라고 말해주니, 집주인도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좁냐며 매우 놀라워 했다. 수다 끝에 계약서를 온라인으로 작성해서 교환하고 보증금으로 한 달 치 월세를 먼저 보냈다.


드디어 집을 구했다!!! 내적 환호를 지르며 유학원에 연락해서 아무래도 친구가 있는 캘거리로 가게 될 것 같으니 제 집은 더 안 찾아 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 대표님은 캘거리도 정말 멋진 곳이라면서,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하시라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


이제 유학원과도 작별(?) 했으니 이제 진짜 혼자 다해야 한다. 주니어 학교 찾고 등록하는 것부터 생활 전반에 필요한 것들을 다 마련하는 것까지.


그래, 까짓것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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