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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정오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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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l 11. 2021

정오 1.

#브런치 오디오북 응모작

#01.


시동걸린 차 안의 조수석에 환이 기운없이 늘어져있다.  

멈춰 있는 자동차의 창 밖으로는 커다란 전원주택들이 모인 동네가 보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덥수룩한 머리에 무채색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그보다 더 어두운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주택의 한 대문에서는 유람이 환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유람 : 걱정마세요, 잘 다녀올께요. 


차에 타고 있는 환에게도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유람은 이야기 중간중간 뒤를 돌아 차 안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대화가 끝난 유람은 차의 운전석으로 들어와 앉는다. 


이유람 : 벨트 매.


유람은 대답 없는 환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기울여 벨트를 메준다. 

환의 엄마가 차로 다가와 창문을 두들기며 환을 바라본다. 

창밖으로 환한 햇살이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추지만 환은 엄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유람은 간절한 표정의 엄마와 그런 그녀를 무시하는 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사람없는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02.

큰 길로 들어선 자동차 안에서 유람은 은택과 통화를 하고 있다. 

차 뒷 좌석에는 양복 두벌과 구두 캐리어등이 지저분하게 놓여있고 

그 위에 놓여진 청첩장에 환하게 웃는 젊은 부부의 결혼사진과 날짜, 시간, 장소등이 적혀있다. 

흔한 청첩장에 한가지 다른 것은 신랑 신부 모두 부모님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람 : 어, 지금 출발했어. 글쎄.. 잘 모르겠네 지도에는 길이 잘 안나와있는데


어깨에는 휴대폰을 끼고 나머지 한손은 대충 펼쳐둔 운전석의 지도를 짚어가며

불안불안하게 운전하는 유람.  


이유람 : 여기서 고속도로 타면 되는 거야? 어. 어어.


갑자기 끼어튼 오토바이에 반사적으로 클락션을 울린다.


이유람 : 아  진짜


흥분한 유람이창문을 내리고 한마디 하려 하자 

옆좌석의 환이 손으로 유람을 막으며 앞 창 너머 신호등을 가리킨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있었다. 민망해진 유람은 헛기침을 하며 창문을 닫는다. 


이유람 : 어어, 가다가 모르겠으면 전화 할게. 일단 끊어


유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문에 몸을 기댄채 눈을 감고 있는 환을 본다.

 

이유람 : 힘들면 얘기 해. 창문 좀 열까?


대답이 없이 적막해진 차안이 답답한 유람은 신호를 기다리며 라디오를 튼다. 

이곳 저곳 주파수를 돌려보다가 경쾌한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멈추고 볼륨을 조금 올린다. 

환이 잠에들기 시작하면서 라디오의 노래 소리도 물속에서 들리듯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시간이 흐르고 환이 잠시 잠에서 깨어난다. 

살며시 눈을 떠 운전석 쪽을 바라보자 

유람이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며 무표정하게 운전을 하고 있다. 

어느 덧 라디오는 경쾌한 정오방송으로 바뀌어 있고  

환은 조금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바깥은 여전히 환하다. 

유람은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즐겁게 웃고 있다.

환은 다시 눈을 감는다. 


꽤 오래 잤다 생각하며 환이 다시 눈을 뜬다. 

바깥은 조금 어두워져 노을이 지려하고 있다. 

운전석의 유람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을 진지하게 따라 부르고 있다.

환은 유람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눈을 감는다. 


#03.  

잠들어 있던 환이 차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눈을 뜬다.  


이유람 : 나와. 저녁먹자.


어느새 깜깜해진 창 밖에 유람이 서있다.

환은 벨트를 풀고 천천히 차에서 내린다.


늦은밤 활기가 없는 휴게소는 대부분의 가게가 닫혀있고   

빛을 내는 꼬마 전구가 잔뜩 달린 복제물 레코드 트럭만이 입구를 밝히고 있다.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거나 전화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유람은 환과 함께 휴게소 식당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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