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여자 누나 남자 동생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박슬예입니다.
회사에서 인사관리 업무를 하고 있고
취미로 블로그에서 파생한 스터디 그룹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생과 함께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라 상상이 잘 안 가네요.
Q1. 코로나로 다들 힘든데 LA는 어떤가요?
미국은 코로나에 대한 대처가 느린 편이라 3월 중순에 가게마다 화장지가 품절되는 대란이 일어났어요. 여기는 물건을 살 수 없으니까 무장을 하자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사람들끼리 감시가 삼엄해지고 총기 판매가 늘어나고. 또 여기는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부에서 내리는 지침에 대해서도 따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게 참 다르구나라고 생각해요.
Q2. 미국엔 어떻게 가시게 된 거예요?
어렸을 때 해외라고 하면 막연히 ‘미국’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처음엔 여름 방학 단기 알바 프로그램이었어요. 시카고에 있는 놀이 공원이었는데, 한국에서 배운 영어로 돈을 번다는 게 짜릿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올 때는 1년짜리 장기 인턴쉽으로 왔었거든요. 그게 LA였어요. 국제공항, 회계사무실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미국에서 취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게 2011년이었으니까 내년이면 10년이 되는 거네요.
Q3. 동생과 사이는 예전엔 어땠고 지금은 어떤가요?
민우가 고등학생 때 제가 이미 미국에서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떨어져 산 시간이 오래됐어요. 제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하면서는 서로 안부만 주고받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민우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늘 가까이 있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우리는 자주 보지 못해도 기본적인 성향이 비슷해서 오랜만에 만나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Q4. 최근에 동생과 연락한 적 있으신가요?
최근에 가족 단톡 방이 생겼는데 만들어진 것도 조카가 생기면서에요. 약간 동생이 부모님한테 조카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건지 한 달에 두세 번 이상은 가더라고요. 연락 잡고 시간 약속 정하는 걸 단톡 방에서 많이 하는데 저는 같이 할 순 없지만 거기서 소식을 들어요
Q5. 작년에 동생 부부한테 티켓을 보내서 미국으로 초대하셨다면서요. 왜 그러신 거예요?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몫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빚진 마음이 있어요. 저희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시기가 동생이 대학생 때였던 거 같은데, 그게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큰 사건 이잖아요. 그걸 혼자 겪게 했다는 죄책감이 있는 것 같아요. 마침 동생도 연말이라서 안 쓴 연차를 쓸 수 있었고 올케가 출산휴가를 쓰고 있어서 ‘그럼 일주일이라도 올래?’해서 왔었어요. 결국엔 제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것 같아요(웃음).
Q6. 그때 뭐 하셨어요?
LA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도 갔다 오고 디즈니랜드도 다녀오고. 올케는 미국을 한 번도 안 와 봤거든요. 조카가 있으니까 더 크면 오기 힘들지 않을까 해서.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그렇게 왔었는데 동생이 왔다간 후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적절하게 잘 왔다 갔다 했어요.
Q7. 두 분의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나온 단어가 애틋함 이더라고요. 너무 어릴 때 떨어져서 그런 걸까요?
딱히 남매라고 해서 사이가 좋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저는 가족 중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골라보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남동생을 고를 거 같거든요.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동지애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는 그 감정을 이야기해도 완벽히 느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맞아 누나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라고 할 수 있는 게 저랑 동생밖에 없잖아요. 그런 동질감이 있고 또 제가 미국에 나와서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자주 보지 못하니까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Q8.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동생이 최근에 아빠가 되었잖아요. 어느 날 나는 지는 거고 태어난 서진이가 피어나는 거야 창창할 거야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보다 심지어 4살이나 어린 동생이 자기 앞날을 두고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그래서 너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 아직 한창인데 무슨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했거든요. 물론 남편의 역할, 아빠의 정체성이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박민우 자체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IT업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는 박민우입니다.
예전에는 취미로 작곡도 하고 기타도 쳤는데
최근에는 돌이 막 지난 아기와 함께 하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뷰가 처음이라 얼떨떨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이고 진실 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Q1. 누나랑 연락은 자주 하시나요?
많이는 안 하는 거 같아요. 문자로 가끔씩 얘기하는데 뜨문뜨문 얘기하니깐 주로 흐름은 많이 끊겨요. 제가 보통 단 답이라 두 세 마디 하면 ‘잘 지내지? , ‘잘 지내고~’ 이렇게 끝나요.
-제일 최근에 한 대화는 뭔가요?
이거 인터뷰 때문에 대화했었어요. 이런 인터뷰가 있는데 해보겠냐고.
Q2. 누나가 유학 갈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때는 지금만큼 친한 편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간다고 했을 때 좋았어요. 어릴 땐 막연하게 외동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복합적이긴 했었어요. 보고 싶을 거 같기도 하고. 그때는 워킹홀리데이가 3~6개월 정도라 방학 때 나갔다 오는 그런 개념으로 이해했었어요.
-가족이 한 명이 줄면 빈자리가 크잖아요.
그쵸. 근데 누나가 원래도 부모님을 케어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때는 그냥 누나가 없으면 집이 화목하지는 않아도 트러블은 없으니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좋았던 거 같아요.
Q3. 어릴 때 누나는 어땠나요?
어릴 때 누나가 성적표 같은 거를 조작한 적이 있거든요. 종이 통지서 같은 거. 그때 글씨를 조작하고 있는 걸 제가 봐서 엄마한테 가서 일렀어요. 왜냐면 들통날 게 뻔히 보이니깐 빨리 혼나고 완만하게 해결됐으면 해서 얘기를 했었는데 누나가 끝까지 잘못했다는 얘기를 안 해서 엄마랑 계속 냉전 상태에 있었어요.
- 고자질했다고 혼나진 않았나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누나한테 혼났겠죠? 제 기억으로는 누나가 사춘기를 쫌 세게 보낸 거 같아요. 말을 안 들었다라기보다는 활동이 좀 과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부모님하고 트러블이 자주 있었거든요. 엄마가 너는 왜 딸인데 사근사근하게 못하냐고 저를 보라고 저는 잘하지 않냐 이런 식으로 얘기 했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Q4. 둘이 가장 크게 싸운 적이 언제예요?
육체적으로 싸운 적이 있어요. 제가 누나한테 욕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무슨 무슨 년이라 그랬나? 중학교 때였던 거 같은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누나가 손으로 제 팔을 잡고 세게 쥐었거든요. 근데 손톱자국으로 피가 났어요 (웃음) 싸우면서도 든 생각이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누나가 밤에 나를 찔러 죽이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너무 살기가 느껴져 가지고 (웃음) 나중에는 수그러들기는 했는데 뭔가 서로 주고받다가 격해져서 그랬던 거 같아요.
- 지신 거죠? (웃음)
그쵸. 잡으면서 그 눈빛부터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웃음)
그때 방이 하나였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가서 일렀던 기억이 나요 이거 보라고
Q5.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게 늘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그렇다고 느끼세요?
그냥 뭐 성격을 서로 아니까 잘 안 건드리는 거 같아요. 거리가 있나? (웃음)
- 누나를 오랜만에 보면 어색해요?
쫌 어색해요. 볼 때마다 조금 어색 하긴 한데 또 같이 있다 보면 괜찮아요. 그래서 이제 볼 때는 항상 애틋하죠. 1년에 한 번 보고 그러니까. 제가 미국으로 가던지 누나가 오던지 하는데 짧은 시간이니까 웬만하면 좋게 좋게. 싸울 일도 없어요. 해봐야 같이 여행 가서 밥 먹고 이런 거니까.
- 예전에 비해 특별히 사이가 가까워진 계기가 있나요?
제가 22살에 미국을 처음 갔을 때 누나랑 술을 먹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마시고, 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서로 보고 그다음부터 좀 극적으로 친해진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제가 어색하지 않게 되게 친절하게 해 줬어요. 같이 살 때는 안 그랬는데 이게 약간 유년시절이랑 분리가 된 거 같아요. 제가 자라온 시기의 누나랑 떨어져 있던 누나랑 각각 다른 사람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Q6. 누나가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부모님과 관련해서는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한 거 같아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빈자리를 느낄 수가 있잖아요.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다 같이 하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막 그거 때문에 ‘ 누나가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건 아니고, 누나가 행복한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Q7. 두 분은 서로를 애틋하다고 표현하셨어요 왜 인가요?
누나가 얘기할 때 표정이나 눈빛에서 애틋함이 느껴져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누나를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애틋함이겠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거죠. 누나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래요
Q8. 누나가 가족 중에 동생을 제일 사랑한다고 하셨다면서요?
근데 저도 고르라면 가족 중에 누나를 꼽을 거 같아요. 이거는 약간 세뇌교육일 수도 있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누나랑) 술을 같이 먹기 시작했거든요. 누나가 맨날 술 먹으면 애정표현을 되게 많이 해요. 아빠랑 셋이 같이 먹을 때도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고 아빠보다 너를 훨씬 더 사랑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듣다 보면 그게 맞구나 싶어요.
- 누나가 그렇게 말하면 뭐라고 하세요?
‘응, 나도 그래.’ (일동 감탄)
그니깐 이게 같이 살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제 성격이 점점 무뚝뚝 해지는데 그 와중에도 누나는 그렇게 얘기를 하니깐. 제가 표현을 못 하는 거지 대꾸는 할 수 있잖아요. 부모님도 이런 관계를 되게 뿌듯해하세요
도움 주신 분들
Illustration by : 선혜 https://www.instagram.com/jsh_ro/
본 제작물은 2020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청년 커뮤니티 지원사업 <청년참>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