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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몬트 Oct 25. 2024

우리는 빗속에서 춤을 출 거야

설령 이 비에 옷이 몽땅 젖는다 해도

뮌헨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다. S는 내일이면 긴 휴가를 끝내고 카메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긴 휴가 중 마지막 종착지인 독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질서 없는 이탈리아와 비교되는 정돈된 느낌이 좋다고 하여 한시름 놓는다. 다시 오겠다는 장담을 들으니 내가 더 흡족해진다. 


유학을 떠나오며 독일에서는 거의 여행 느낌을 가지지 못했는데 이렇게 설레어하는 S를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이곳에서도 체험해 본다. 어제는 S가 독일에 온 이유이자 그중에서도 뮌헨을 오겠다 다짐한 원인이었던 Oktoberfest*가 열리는 곳을 갔다. 많은 이들의 사전 경고(?)와는 달리 그리 혼잡하지 않았고 그저 엄청나게 큰 야외 놀이동산에 온 느낌이었다. 비록 테라스이긴 했지만 자리도 금세 잡을 수 있었고 추웠지만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배를 채우고 소화를 시킬 겸 잠시 천막 안을 들어가서 본 광경은 그야말로 취객들이 단체로 미치고 뛰는 적나라한 그것이어서 10분여 정도만 머물렀음에도 순식간에 기운이 소진되는 걸 느꼈다. 이런 광경을 두고 아마 사람들이 그리들 경고를 했던 건가, 싶었다. 


그뿐만이랴. D가 얘기한 대로 (Das Oktoberfest ist überall!**), 광장을 빠져나와도 U-Bahn***에서조차 술이 취해 흥이 오른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와중에 햄버거와 술을 한 차례 더 먹겠다고 숙소로 포장을 해와서 샤워를 마치고 S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새벽까지 시간을 보냈다. 전날에도 잠을 잘 못 자서 금세 잠에 빠졌는데, S 말로는 내가 코도 그릉거리며 푹 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S-Bahn****을 기다리며 아침 커피를 마시고 Freising으로 향했다. Weihenstephan이라는 맥주 브랜드의 양조장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단체 예약밖에 가능하지 않아 양조장을 직접 들르지는 못하고 바로 Biergarten*****으로 향해야 했지만, 이 맥주 브랜드에 담긴 S의 오래전 추억을 들으니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특별해진다. 


S-Bahn을 타고서 꽤나 가야 했기 때문에 도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도착한 Freising은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의 한 마을 같았다. Biergarten에 도착해 자리가 마땅히 없어 햇볕이 쏟아지는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오히려 시킨 맥주와 음식들이 볕에 반사되어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고 S가 추천한 크리스털 맥주는 계속 생각이 나는 맛이었던 데다 애초에 이 모든 분위기를 그와 함께 나누고 있다는 기쁨이 더해져 감히 독일에서 먹은 맥주 중 가장 맛이 좋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S가 타투를 받기로 한 예약이 있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일정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을 곳이라 정류장까지 걸으며 둘 다 입을 모아 말했다. 이곳을 알게 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친구의 질문에 오래전 미국에서 이 맥주를 퇴근마다 마셨을 때 지금의 순간을 예상하지 못했듯, 지금 생각할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와 있을 거라고. 그때 나도 다시 옆자리에 끼어 있겠다며 다독였다.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 


뒤이어 타투샵에 도착했다. 예약한 시간을 다소 넘겼음에도 괜찮다며 S에게 입장하라 반겨준 독일인들에게서 생경한 정을 느낀다. 친구가 새긴 문구는 나 역시 언젠가 들어본 것이다.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how to dance in the rain. 카메룬에서 고단한 하루들을 보내던 도중 프랑스어 수업에서 들은 문구라고 S가 알려주었는데, 이탈리아에서의 다소 고난했던 휴가를 지나며 그 어느 때보다 저 문구가 떠오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며 타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 한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누구에게나 고난을 선사하는구나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만 결국 아름다운 풍경만이 잔상처럼 남아 다시금 이탈리아행을 꿈꾸는 것이다.) 



삶이 고통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살아내는 것 또한 고통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그 고통스러운 삶을 꾸려나갈 것인지 잠시 가늠하며 시술을 받는 S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금방 시술이 끝나고 시내를 나선다. 큰 도심을 보면 내가 사는 독일의 도시와는 달라 문득 여행자의 자세가 된다. 금요일 밤이라 시끌벅적하면서도 그리 소란스럽지는 않은 거리를 걸었다. 몇 가지 쇼핑을 하고 B의 휴가 마지막 날 저녁은 한식으로 마무리한다. 밖에서 와인 한 잔을 더 할지 숙소로 돌아갈지 설왕설래를 하다 이미 숙소에 남아 있는 지난번 사 둔 (무려..) 1리터짜리 맥주와 다 먹지 못해 포장을 해온 저녁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생수병만 들고서 긴 귀갓길에 향하는 U-Bahn에 올라탔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젠가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간에. 다만 다시 만날 때 우리는 여전히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제 만난 듯 유난스럽게 반가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바뀐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으며 찬찬히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에 비로소 익숙해지겠지. 모쪼록 건강히 다시 만나길 바랄 뿐이다. 그런 소소하고도 가장 본질적인 바람만이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남는 것이다.




옥토버페스트.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독일에서 열리는 큰 맥주 축제로, 독일의 각지 양조장들이 모여 천막을 꾸려 길게 자리를 놓은 다음 맥주를 사랑하는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비단 뮌헨뿐만 아니라 슈투트가르트 등 다른 도시에서도 열리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 "어딜 가든 옥토버페스트야!"

*** 우반이라 발음하며,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같다. 

**** 에스반이라 발음하며, 통근 철도로서 비교적 도심 외곽 지역이나 다른 지역까지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 비어가르텐. 레스토랑마다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하여 맥주 및 음식을 서빙하는 곳을 말한다. 특히 여름에는 실내보다 야외인 비어가르텐의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371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60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지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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