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만 쓰는 이상한 가계부
우선 자신의 소비패턴을 파악한다. 약 6개월 정도 가계부를 써보기를 권장한다. 가계부를 적을 때는 ‘10원 단위까지 맞춘다’는 생각은 버리고, ‘1만 원 정도까지는 맞춘다’는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래야 중간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만두는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가계부를 쓰니까 돈도 아껴 써야지…’하는 생각은 버린다. 자신의 소비패턴을 알아보는 것이므로 늘 지출하는 대로 쓰고 단순하게 적어본다. 앱을 활용해도 되고, 수첩을 활용해도 되고, 특정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소비패턴을 파악한다. 심지어 나는 매일 가계부를 쓰지도 않았고, 월급날을 기준으로 카드값이 나가는 것을 적는 것이 전부였다. 항목이 많은 가계부는 쓰다 보면 지치기 때문에 나만의 가계부를 한 달에 한 번씩 정리했다.
수입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수입란에 그 달 입금될 월급 금액을 적는다. 지출은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고정비와 변동이 생기는 변동비로 나눠서 정리했다. 보험료나 부모님 용돈과 같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금액은 고정비 항목으로 매달 동일하게 지출하도록 기재했고, 매달 변화하는 카드값은 변동비 항목에 기재하는 방식이다. 카드값 안에서도 다양한 항목들이 많겠지만 그 부분까지 자세히 나누지는 않았다. 식음료에 많이 쓰는지, 옷을 사는지, 여행비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인데 굳이 그 항목을 나누는 스트레스를 덜기 위함이다. 또한 이 가계부의 목적은 각 항목별로 내가 얼마나 쓰는지를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월급 내에서 규모 있게 쓰고 있는지 혹시라도 월급보다 더 많이 써서 마이너스 재정상태가 되는 건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에 있으므로 자세한 항목 구분과 디테일한 기재는 생략한다. 정말 포기하기 않고 6개월 이상 기재하기 위해서 가장 간단한 포맷을 가지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점검에 보자는 것이 취지이다. 틀을 만들어 놓고, 딱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보면 된다. 하지만 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아.. 남는 게 없구나…’, ‘이러다가는 곧 파산하겠구나…’ 그렇다! 그런 마음이 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제 급한 마음이 든다. 마이너스 재정상태라면 어떻게 갚아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플러스 재정상태라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했던 '월급 포트폴리오'를 권한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카드회사, 보험회사, 통신회사 등으로 빛과 같이 사라진다. 언제 월급이 들어왔었냐 할 정도로 바닥을 보이기까지 일주일도 안 걸린다. 그렇게 또 제로섬 (zero-sum)인 월급이 들어왔다, 나갔다. 마이너스가 아닌 게 얼마냐고 위로하기엔 다음 달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애써 무덤덤한 척한다. 그렇게 늘 똑같이 월급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 그리고 습관이 돼서 저축은커녕 월급의 규모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반복하고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월급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의 기준을 마련해 주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포트폴리오(Portfolio)”라는 단어는 이력서에도 쓰고,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묶어놓은 것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며, 회사에서 제품의 상하관계나 등급들을 정리할 때도 사용한다. 그렇게 모으고 묶으면서도 규칙을 부여하여 배열하는 것을 ‘포트폴리오’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월급을 활용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도 필요하다. ‘가계부’는 내가 사용한 내역을 정리하고, 지출 위주로 정리된다고 본다면, 포트폴리오는 큰 틀(Frame) 같은 것이다. “지출 계획”이나 “예산”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뭔가 멋지고 약간은 거창해 보이는 이름으로 붙여 보았다. 그리고 ‘지출 계획’, ‘예산’이라고 이름 붙여 놓으면 너무 하기 싫을 것 같기에 일종의 “목표”라는 의미에서 “포트폴리오”란 이름을 활용하겠다.
(사진설명) 통장 사진
그동안 내가 투자하고 저축했던 통장들을 한 데 모아놓고 찍은 사진이다. 온라인 시대에 전산상으로도 입출금 내역을 알 수 있지만 오프라인 통장이 더 친근한 나는 통장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어느샌가 통장을 모아놓고 있었다. 약 10년간의 부동산 투자와 약 15년간의 저축의 파노라마를 대신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이만한 사진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절약해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없다. 필요성을 느끼면 행동하게 되어 있다. 이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확인해 보는 것뿐이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된다. 가계부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 엑셀로 복잡하게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종이 한 장에 그 달 카드값만이라도 모아서 적어보자. 그리고 들어오는 월급과 비교만 해보자. 이렇게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