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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이모저모고모

by 헤일리 데일리 Feb 09. 2025

헤어롤을 곧잘 가지고 노는 호두. 본인 머리에 하나를 붙이고 엄마인 내 머리에도 붙여줬다. 그러고도 롤이 많이 남자 할머니 머리에도 붙이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손님 어서 오세요."


미용실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브로콜리 파마 상태인 할머니 머리는 시술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호두가 다음 손님을 물색하는 것 같아 보여서, 나와 친정엄마는 이구동성으로 할아버지를 추천했다.


"이제 할아버지 머리에 해주면 되겠다."


하지만 호두 왈,


"할아버지는 머리가 없잖아."


할아버지는 뚜껑이 좀 날아가셨다. 그런데 그걸 대놓고 말하면 어떡하니 호두야. 가뜩이나 할아버지 콤플렉스인데.... 눈치 챙겨!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키즈카페에 놀러를 갔다. 보호자도 참석이 가능한 현장학습이어서 나는 남편을 보냈다. 나는 마침 할 일도 있고, 또 아빠가 아이와 추억을 쌓으라는 의미에서. (사실은 키카에서 애 따라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였다는 건 안비밀이다.)


그런데 호두는 아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아빠가 너무 살뜰한 '딸바보'였어서 그런지, 본인보다 아빠를 서열 아래로 보는 것만 같다. 이번 키카에서도 호두는 새침데기처럼 아빠를 본 체 ,만 체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엄마/아빠와 같이 다니면서 노는데 우리 호두만 절친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다녔다고. 심지어는 다른 친구의 어머님들께 이모라고 부르며 그렇게 살갑게 대했다는데... 아빠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나 보다. 결국 아빠는 아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마음의 상처만 가득 입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아직 사춘기도 아니고, 유치원도 안 간 딸내미가 왜 그럴까? 누가 보면 집에서 엄마가 아빠를 무시해서 딸이 보고 배운 거라고 할까 봐 무섭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이 가시나를 어찌하면 좋을꼬.




내 동창 결혼식에 호두를 데려갔다. 


"엄마랑 아빠는 결혼할 거야?"


어린이집에서 '결혼'이라는 것을 배웠는지 가끔 집에서 이런 말을 했었던 아이. 결혼식이 뭔지 궁금했던 터에 호두는 드디어 그것을 직접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식이 다 끝나고 마지막 친구들 사진 촬영 시간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하객석에 있었고 나만 사진을 찍으러 단상에 올라갔다. 처음에는 엄마랑 같이 간다고 소리를 지르고 하더니 아이는 금세 얌전해져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내려와서 남편이 찍은 동영상을 봤다. 영상 속 호두는 사진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박수를 치고 쌍따봉을 날리고 있었다. 혼자 너무 진지하게. 남편에게 비하인드를 들어보니 그 이유인즉슨, 호두는 공주님 웨딩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끊임없이 감탄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도 나중에 입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호두는 최고의 매너를 가진 하객이 되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진심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 상태였다. 어찌나 기특하던지 또 한 번 많이 컸음을 느꼈던 순간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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