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조짐을 느끼다

by 헤일리 데일리

누군가와 여행을 같이 가야 할 때, 여행 스타일 내지는 성향이 잘 맞아야 함이 필수다. 서로 다른 사람끼리 여행을 하다가 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파탄이 나는 경우도 종종 봤다. 물론 성격이 좋은 사람들은 예외겠지? 나는 성격이 못나서 잘 모르겠다.


이번 가을에 나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알고 지낸 지는 20년이 돼가는 이들이지만 5박 6일간의 여행은 처음이다. 그것도 '해외' 여행이라니! 우리는 봄에 비행기 티켓을 일찍이 끊어놓고 각자 일상에 치여 살다가 얼마 전에야 숙소를 예약했다. 그마저도 숙소 예약이 끝나면 당분간 또 잊고 살다가 여행 시점이 오면 훌쩍 떠날 수 있겠거니 했는데... 투어 예약을 위해 미리 세부 일정을 짜야했다. 점점 인기 있는 투어 상품이 매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처음 한두 가지 계획을 정할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일정을 짜면 짤수록 잡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삐걱거리는 대화들 속에서 열이 뻗친 나는, 열기를 식히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갔다. 그리고 왜 이렇게 여행계획 짜기가 힘든지 분석에 들어갔다.


원인 1. 카톡 대화


모든 사단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카카오톡


바쁜 현대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의사전달을 하기에 이렇게 좋은 도구가 있을 수 없지만, 모든 오해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앞뒤 맥락이 거의 잘린 상태로 단문이 오가기 때문에 의도 파악을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가령 여행 둘째 날 A라는 곳에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동선에 맞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친구는, 자신의 고집이 반영된 새로운 동선을 제시하며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한 후에 그 무거운 케리어를 들고 새로운 관광지로 가서 액티비티를 즐기자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내놓으며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이런 친구가 있는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하나하나 논의를 하며 같이 구글 지도에 동선을 표시하는 게 맞았다. (처음 구글 지도에 일정 세팅을 한 친구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그러나 카톡에서 절대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문해력이다. 요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그 문해력. 카톡에서의 대화는 그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하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제시해도 결국 카톡 대화를 읽는 사람이 제멋대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면 결론은 늘 이상한 방향으로 가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바쁠 때 카톡을 읽다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적이 있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늘도 결론 없는 대화가 빙빙 돌아가고 있길래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 그냥 전화로 얘기할래?



원인 2. '도르마무'형 인간


친구 L은 논의된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는 데 일등이었다. 일명 '도르마무'! 즉, 계속 똑같은 상황을 무한 반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결정이 마무리되지 않고 계속 대안의 반복...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체기가 올라올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리조트에 가기로 한 날, 리조트 내 프로그램 중 무얼 골라야 할지 의논 중이었다. 우리는 수영 쪽으로 가닥을 잡던 중 필라테스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필라테스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도 그 안에 동의를 표하고 있었는데 친구 Y는 필라테스를 못한다고 난감해했다. 그래서 다시 수영으로 결정을 내리자고 결론지으려 함과 동시에, 친구 L은 마사지와 요가, 스쿼시도 있으니 다시 골라보라며 갑자기 대안을 확 늘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결론 없이 돌고 도는 대화 속에서 수영 레슨의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그냥 하루라도 빨리 예약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이러다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올 것 같다.



원인 3. 배려 아닌 배려


그냥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해.


처음에는 친구 Y의 이런 배려가 좋았다. 계획을 짤 때 불란 없이 잘 진행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의사결정권을 남에게 미뤄버리는 행위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의견이 갈려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필라테스를 못한다는 친구 Y는 나머지 의견에 따르겠다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똑같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하는 입장인데, 누군가가 배제되는 스케줄을 짤 수 없어서 우리는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논의를 했다. 그 정도 했으면 Y 본인도 우리 생각에 동의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다시 뒤로 숨어버렸다.


난 필라테스 괜찮다니까!! 그냥 너희 할 때 앉아만 있을 거야. 그냥 예약해.


정말 이게 배려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고 의견 조율을 빠르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귀중한 시간을 들여서 계획을 짜고 있는 만큼 무임승차는 없었으면 한다.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여행 계획. 이러다 서로 의가 상해서 돌아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순수함을 가장한 도르마무형, 배려심 뒤에 숨은 무임승차자, 이것저것 눈치 보다 끝날 것 같은 걱정인형,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조급증... 이들 캐릭터들 사이에서 나는 너무 힘들다. 솔직히 나만 잘 참으면 별일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우유부단한 상황에서 참기가 너무 힘들다. 효율을 최고로 여기는 효율충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냥 우정 여행이니까 어떻게 되던지 간에 무사히 잘 넘기고 즐겁게 놀다 오고 싶다. 평생 안 보고 살 인연들은 아니니까. 그런 이유로 참기 힘든 이 마음을 달래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켠다. 그나마 속이 좀 평온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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