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며 고지혈증 극복(상)
제가 올해 4월 달 엄청난 고지혈증이 확인된 후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이 명상입니다.
사실 식단 조절은 예전에도 체중이 좀 불으면 했었고 맨발산책도 혈압이 살짝 올라갔던 8년 전에 해 보았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경험이 있었죠.
그렇지만 명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명상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은 모릅니다. 호흡에 집중하기도 하고 산책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맞게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명상의 종류도 참 많은데 제게 있어서는 깨달은 분들의 책을 읽는 것이 곧 명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빨리 나를 잊어 버리고 책 속의 스승에게로 마음이 모아지니까요.
아직은 초보인 제게 명상은
나를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를 저항없이 바라보는 것
이라고 느껴집니다.
물론, 이것은 제 나름의 정의이기 때문에 얼마나 맞는지 모르지만 책을 읽으며 만난 스승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이렇게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책읽기가 곧 명상이고 명상이 곧 책읽기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늘 행복할 수는 없어도 명상을 통해 잠잠해 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 일들에 사로잡혀서 분요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물론, 매번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명상을 통해 연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명상이 고지혈증에 도움이 되는지 논문을 찾아보았습니다.
명상이 심혈관질환의 위험요소를 낮추는지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리뷰 논문만 보면 명상도 만병통치약쯤 되는 것 같습니다.
뇌기능 향상, 스트레스 감소, 혈압 개선, 금연 유도, 인슐린 저항성과 대사증후군 개선, 초기 동맥경화 개선, 혈관기능 회복, 심장기능 회복, 심혈관질환 예방, 심혈관질환 중증도 감소와 같은 듣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엄청난 효과들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물론 내용상 근거가 명확해 보이는 것도 있고 그냥 가능성만 있는 정도의 항목도 있습니다.
인슐린 저항성, 대사증후군, 초기 동맥경화, 내피세포 기능 회복, 심장 기능 회복 등은 제가 보기엔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썩 좋은 데이터는 아닌 것 같아서 앞으로 좀 더 저도 공부를 해봐야겠습니다.
심혈관질환의 예방 효과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아직 이중맹검법을 이용한 좀 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명상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보조적인 치료로 쓰일 수 있겠다는 연구내용의 요약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책을 통해 만난 명상 스승들과 대화하다 보니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제게는 잘 맞는 듯해서 더욱 끌리는 치료방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명상을 하면서 부작용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 논문은 최근에 찾아본 것인데 아마도 연구결과가 "명상은 고지혈증이나 심혈관질환의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나왔더라도 저는 명상을 계속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 라이프스타일의 한 축으로서 명상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꼭 고지혈증 극복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알아가고 세상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방법이니까요.
혈압 조절, 뇌기능 향상, 스트레스 감소, 동맥경화 예방, 인슐린 저항성 개선,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 금연, 대사증후군.. 이것들 외에도 다양한 효과가 연구되어 있었지만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 만으로도 명상은 충분히 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좀 더 찾아보니 명상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래의 연구는 명상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감소시키는 배경에 대해 초록에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상은 혈압을 조절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고, 지방의 산화를 막고, 세포의 노화를 막아주어서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명상을 하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 TOP 5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 한 권을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1. 놓아버림_by 데이비드 호킨스
의사이자 영성이 높은 명상가였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놓아버림 Letting go"이라는 책은 의식의 다양한 수준과 그에 따른 에너지 수준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정의 수준도 세밀하게 구분해 놓아서 감정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감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데 정작 우리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그 뒤에 숨은 의미는 무엇인지 도통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우리 주변에서 영향을 줄 만한 사람 중에서 아무도 몰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세세하게 구분하고 그 뒤에 숨은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지갯빛 같은 다양하고 이쁜 감정을 흑백처럼 무채색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좋다, 나쁘다. 좋다, 싫다. 짱 좋다, 짱 싫다. 짱난다... 뭐 이런 정도로 밖에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오케스트라 소리를 그저 소음처럼 들을지도 모릅니다. 한 마디로 총천연색 삶이 펼쳐지는데 혼자서 흑백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단조로운 삶이 되겠죠.
놓아버림 책에서 크게 알게 된 것은
라는 사실입니다.
슬픔이나 불안,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그 자체 보다도 그런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만 하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 훨씬 더 부정적인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정리해 둔 의식 수준과 감정의 레벨에 따라 삶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한눈에 보기 쉽도록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의식 수준과 삶에 따라 神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神이라고 표현했지만 종교적인 느낌이 불편하신 분들이라면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 또는 우주의 기운, 道, 영성...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입니다. 어쨌든 인간 사유의 지평 너머에 있는 어떤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저는 감정과 의식 수준에 따른 에너지의 도표에서 용기를 특이점으로 보고 별도로 분류했습니다.
용기는 무언가를 힘차게 해내는 에너지라기보다는 제 느낌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피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의식 수준을 말합니다.
어떤 인과의 법칙으로 인해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피하려고 하거나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이건 아니야...",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들곤 하죠.
이런 마음은 제가 느끼기에는 마찰열과 같은 것입니다.
물리학에서 마찰열은 무언가 서로 운동의 방향이 달라서 부딪치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마찰열은 폐열이라고 합니다. 자원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라 버려지는 에너지라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엔 인생에는 세 가지 자원이 있습니다.
첫째가 시간, 둘째가 의식적 에너지, 셋째가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이죠.
돈은 태어날 때부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능력에 따라 차이가 많은 자원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의식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입니다. 돈이나 시간도 낭비하면 안 되지만 의식적 에너지도 낭비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외로움에 저항하면서 제 의식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너무도 아까운 인생의 두 가지 자원을 낭비한 것이죠. 가격에 비해 형편없는 물건을 잘 못 사면 그렇게도 화가 나고 아까워하는데 정작 소중한 의식적 에너지와 시간을 후회와 원망, 분노로 낭비한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부정적 감정에는 부정적 상황과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숨어 있어
현실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면 됩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는데도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의식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사람 때문에 크게 놀랐다면 그 순간 속에서 욱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잠자기 전에 또 그 옆 차의 운전자 얼굴과 차량의 모습이 떠올라 욕을 한다면 그것은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동료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흉을 본 사실을 알았다면 그 당시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물론 수행이 잘 된 분이라면 그런 상황도 그렇게 마음속에서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저 녀석에게 어떻게 하면 되갚아 줄까"하면서 두고두고 이를 갈고 있다면 이것도 의식적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낭비하면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수명을 단 1년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좋은 음식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면서도 이런 분노와 원망, 후회와 슬픔에 휩싸여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이런 부정적 감정이 인생에 있어 낭비라고 생각이 든다고 해서 피하거나 몰아내려고 하면 그 부정적 감정에 더욱 에너지를 불어넣는 셈이 되어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생명력을 갖고 오래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런다고 물러갈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권유처럼 감정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 내 속에서 분노가 올라오고 있구나."
"내가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도 그대로 허용하고 잠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자기를 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떼를 쓴다고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내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내 감정이 아니니까요.
감정은 내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노라는 감정의 유효기간은 15초 이내입니다. 아드레날린과 같은 분노호르몬의 반감기는 3초 전후입니다. 그러니 3초만 지나도 폭발적인 분노의 감정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15초만 지나면 원래 수준으로 감정이 사그라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를 표출하면 상대는 그에 따르는 자기만의 방어태세를 취하거나 아니면 내게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분노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면 지속적으로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반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압하면 내 속에서 분출되지 못한 분노의 에너지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하면서 내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내 머릿속에서 나를 화나게 한 상대방에 대해 응징하고 싶은 욕구와 힘이 약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억울함이 뒤섞여서 머릿속에서 뱅뱅 돌면서 계속 마찰열을 일으킵니다. 분노호르몬은 유효기간이 15초인 반면 분노에 대한 몸의 반응을 조절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반감기는 한 시간이 넘습니다. 그러니 분노호르몬이 나오고 난 뒤에도 스트레스 호르몬은 계속 몸안에 남아 있어서 사람이 지치게 됩니다. 화를 내거나 화를 참으면 사람이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은 코티졸이 계속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된다면 만성피로나 번아웃 증후군에 쉽게 빠지고 몸에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으니 아무런 의욕이 없게 됩니다.
분노를 표출하면 상대의 감정을 다치게 하거나 내 속에 있는 더 큰 분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분노를 억압하면 내 속에서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되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 사람이 지치고 의욕이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데이비드 호킨스의 말대로 다만 그대로 지켜보고 그런 감정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감정은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니까 알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화가 나서 칭얼대는 제 감정에게 우쭈쭈 하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랬어?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랬어?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났구나."
분노에는 반드시 채워지지 않은 소망이나 욕구가 있습니다. 대체로는 안전, 존중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이지요.
그러면 내 속에서 짜증을 부리던 부정적인 감정의 어린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어.
나는 저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렇게 상냥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
그런데 이 말을 상대방에게 내가 존중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냥 나도 화를 내고 말죠. 이건 게임에서 진 겁니다.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게 넘어간 셈이죠.
저도 연습 중입니다.
매번 잘 되지는 않지만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니까 내 속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려고 합니다.
지혜와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의식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불편한 것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이야기하는 의식 수준에 따른 에너지는 요가에서의 차크라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물라다라라는 가장 기초적인 뿌리 차크라의 에너지가 200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이 뿌리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용기도 에너지 수준이 200이니까 용기가 바로 우리의 생명력의 시작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용기 이하의 의식 수준은 삶을 더 생생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축소하고 어둡게 만들어 오히려 죽음에 가까운 에너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부정적 에너지를 몰아내려고만 하면 오히려 그런 부정적 감정의 유효기간을 늘리는 것과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마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내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적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상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감정은 정말로 구름과 같습니다.
내가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실제로 붙잡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각구름처럼 흘러갈 것이 나의 의식적 에너지를 통해 힘이 세져서 먹구름이 되고 때론 폭풍우가 되어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감정은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집착입니다.
모든 고통의 시작은 이 집착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굳이 부처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정적 감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따로 글을 써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명상을 하면서 만난 보석 같은 책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놓아버림"에 대해 소개를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명상을 하면서 만난 또 다른 스승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