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이학년, 나는 전학생이었다. 낯설고 어색한 학교생활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미술 시간 덕분이었다. 미술 시간엔 주로 그림을 그렸다. 가끔 찰흙이나 색종이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엔 선생님이 주제를 던져주면,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라면 워낙 자신 있기도 했지만 내가 미술 시간에 열중했던 이유는, 그림이 교실 게시판에 걸리는 영광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아이들의 그림을 주욱 둘러보며 게시판에 걸릴 영광의 그림들을 선정했다. 내 그림은 자주 선택 받았다.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교실 뒤쪽의 게시판으로 걸어가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초등학생 그림 실력이란 것이 거기서 거기였겠지만, 특별히 훈련을 받지 않는 한 타고난 재능 같은 게 작동하는 법이어서, 게시판에 걸리는 그림의 주인들은 대부분 똑같은 학생들이었다. 혁이도 그런 아이 중의 하나였다. 나는 내 그림이 걸리는 것에만 신이 나서 우쭐했지만 혁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 혁이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야, 똥! 나랑 내기하자.”
내기? 나는 아마도 좀 멍청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뜬금없이 내기라니, “내가... 왜? 뭘?” 나는 그렇게 물었을까. 아무튼 “게시판에 누구 그림이 더 많이 걸리나 내기 하자구.” 혁이가 이렇게 말했던 건 비교적 정확히 기억이 난다. 우리의 내기는 그날부터 시작됐다. 나와 혁이가 미술 시간에 유독 집중했다면 그건 물론 내기 탓이었다. 우리의 내기에 상벌이 있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그림이 게시판에 걸리지 못할까 나는 좀 초조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내기가 시작된 후부터 학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우리 둘의 그림은 늘 게시판에 걸렸다. 말하자면 무승부였던 셈이다.
마지막 미술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선생님이 잠잠했다. 게시판에 걸어둘 그림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들의 그림을 둘러보기만 하셨던 것이다. 그날의 주제는 ‘소가 있는 목장’이었다. 나는 몇 그루의 나무들과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 그리고 누런 소를 그려 넣었다. 소를 그리는 게 쉽지 않았다. 코뚜레를 한 소 한 마리와 풀을 뜯어먹는 소 한 마리를 그렸다. 어찌 보면 돼지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비대한 말을 그린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의 그림은 더 가관이었다. 도무지 동물로 보이지 않고 형체도 불분명한, 그러나 그걸 그린 아이는 소라고 우겨대는 소 아닌 소 그림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이번에도 내 그림이 선택받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혁이의 그림이 궁금했다. 혁이는 내 뒤의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고개를 돌려도 혁의 그림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혁의 그림을 보려면 혁의 자리로 찾아가야 했다.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짓이라 나는 금세 마음을 접었다. 잘 그렸겠지 뭐... 그러나 이상하게 느낌이 싸했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게시판에 한 번도 그림이 걸리지 못했던 사람들 손들어봐!” 몇몇 아이들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정말 이것밖에 없어? 다시 기회 줄게. 게시판에 자기 그림 걸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 걸었던 사람!” 그제서야 아이들은 “저요! 저요!” 막무가내로 손을 들기 시작했다. “자, 그럼 그 사람들만 게시판에 그림을 걸고 와!” 아이들이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몇 아이들은 완력으로 제 그림을 걸겠다며 작거나 힘없는 아이를 밀치기도 했다. 아비규환까지는 아니었지만 도때기 시장만큼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딱히 질서를 잡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좀 시시해지는 기분이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는데 바로 그때 게시판에 그림을 걸고 있는 혁이의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어? 쟤가 왜 그림을 걸지? 나는 어쩐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림을 걸고 자리로 돌아오는 혁이는 당당했고 선생님은 여전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께 일러바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우물쭈물 고민하던 차에 수업이 끝나 버렸다. 쉬는 시간이 되자 혁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이겼지?” 혁이가 개선장군처럼 거들먹대며 뻔뻔한 낯짝을 들이댔다. “야, 그건 반칙이야!”, “아무튼 내 그림이 한 번 더 게시판에 걸렸잖아. 내가 이긴 거야!” 혁이가 메롱하더니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분하고 허탈했다. 게시판에 가까이 가서 혁이의 그림을 자세히 봤다. 혁이의 농장 그림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잘 그린 그림이었다. 송아지 서너 마리를 가운데 배치하고 스케치북 사면엔 울타리까지 세심하게 그려져 있었다. 송아지는 검은색 바탕에 흰점이 찍힌 젖소였다. 내가 그린 누렇고 촌스러운 소 그림과는 격이 달라 보였다. 혁이의 그림이 그곳에 걸리는 건 어쩐지 정당해 보이기도 했다.
혁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시샘이 많았던 나는 선생님이 편애하는 아이들을 잘 찾아내곤 했는데 혁이는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수업 시간엔 도맡아서 발표했고 받아쓰기도 늘 만점을 받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늘 혁이에게 질문했고, 혁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저학년이라 반장은 따로 없었지만, 혁이는 명실공히 반장 역할을 맡은 학생이었다. 나는 혁이의 젖소 그림에 기가 죽었다. 분명히 혁이가 반칙을 한 것임에도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인 양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억울한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생의 어느 순간엔 반칙과 위선으로부터 탄력을 받을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한 영원히 서러운 패자로 남는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그것에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무엇을 탓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나와 혁이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내기를 하기 전부터 우리는 꽤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어울렸던 기억을 되새겨보면 그렇다. 우리는 자주 함께 놀았다. 방과 후면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 기구를 타며 늦도록 함께 놀았다. 미끄럼이며 통나무며 그네와 철봉을 오가며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팠고, 해는 기웃기웃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흐느적대며 헤어지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운동장에서 한참을 놀다 보니 스타킹에 흙이 잔뜩 들어가서 발바닥이 서걱댔다. 나는 스타킹을 냅다 벗어서는 철봉에 묶어 두었다. 스타킹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구름사다리를 타는 데는 맨발이 제격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문득 저 혼자 매달려 축 늘어진 스타킹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혁아. 내 스타킹 누가 훔쳐가면 어떡하지?” 구름사다리의 꼭대기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던 혁은 휙 고개를 돌려 스타킹을 쳐다봤다. “저 더러운 걸 누가 가져가냐? 똥이 신던 건데!” 혁이는 별꼴을 다 본다는 듯 비웃었다. 나는 너무도 부끄러웠지만, 그래서 혁이의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름사다리의 맨 꼭대기는 내가 올라가기에 너무 높았다. 눈알이 찢어져라 째려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스타킹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집에 돌아가려던 내게 막상 그걸 챙겨 준 건 혁이었다. “잠깐만!” 머리카락을 날리며 뛰어간 혁이가 철봉에 매달린 스타킹 매듭을 풀어선 내게 던졌다. “잘 좀 챙겨라. 여자애가.” 나는 좀 민망했지만 그런 타박이 싫지는 않았다. 내가 스타킹을 주섬주섬 다 신을 때까지 혁이는 멀찌감치 떨어진 교문 근처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어느 날인가는 혁이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었다. 왜 갔는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남녀가 유별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건 좀 특별한 일이었다. 혁이는 어디선가 ‘공기’가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와서는 내 발 앞에 좌악 쏟았다. “이거 하고 놀아.” 그리고는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휘익,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혼자서 공기놀이를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공기놀이를 두 판쯤 하고 있을 때 혁이의 형이 방에 들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여자애가 왜 남자집엘 왔니?”하고 물었다. 내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혁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제 형을 쏘아보고는 밖으로 나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세상에나, 그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멋졌다. 왜 있지 않은가,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친구를 지켜주는 야성미 넘치는 남주의 모습 말이다. 나는 든든한 혁이의 등짝을 따라 집을 나섰고, 우리는 공사장 모래더미에서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까지 또 그렇게 오래도록 놀았다. 어스름한 기운이 공사장 주변을 흐느적대기 시작하자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가 우리집까지 나를 데려다 줬던가,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무심히 던진 한 마디는 아직도 기억한다. “있잖아. 우리 형이 성격이 좀 나빠.”
삼학년으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손바닥에 싸인펜으로 새로운 반이 될 숫자를 적어주었다. 내 차례가 됐다. 7반이었다. 혁이가 다가와 내 손바닥을 열어보더니 소리쳤다. “와, 다행이다! 똥이랑 다른 반이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 할 틈을 주지 않고 교실 밖으로 폴짝대며 뛰어나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는 다시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부터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자꾸만 혁이가 보고 싶은 거였다. 방과 후에 운동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일부러 혁이네 반을 기웃거리거나 혁이 집 앞을 어슬렁대기도 했다. 가끔 그를 만나기라도 하면 심장이 불에 덴 듯 따끔했다. 반가워서 짧은 인사라도 나눌 만했건만 혁이는 나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럴수록 나는 혁이를 애타게 찾았다. 그리움은 제 몸통에 바람을 채우고, 끝내 펑.하고 터져버릴 듯 차올랐다. 나는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일기장 말고 나만의 비밀 일기장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만 씌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혁이었다. 한 여름밤, 반짝이던 몇 개의 별빛을 올려보며 살짝 불러보던 이름도 혁이었다. 혁이를 부르는 입술에서 달큼한 맛이 났다. 그때 내 나이 열 살, 초등학교 삼학년이었다.
유년의 첫사랑은 꽤 길게 이어졌다. 혼자만의 상상으로 나는 혁이와 열 번쯤 결혼했고, 아이도 열 명쯤 낳았다. 행복했고 황홀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듯 상상을 배신하기 십상이었고, 상상은 짓밟히고 뭉개졌으며 잔인하게 난도질당했다. 그러니까 그 슬픈 일화는,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난 어느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은 발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우리 반의 대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공부는 별로였지만 예체능 쪽에는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가. 엄마의 매를 피해서 집 밖으로 내달린 적이 있었다. 약이 오른 엄마가 총채를 들고 나를 쫓아 나왔는데, 나는 골목길을 후다닥 뛰어서 집 앞 공터까지 도망을 쳤다. 공터를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등 뒤에 바짝 쫓아오던 엄마가 숨을 몰아쉬며 멈추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우리를 구경하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엄마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엄마가 갑자기 씩 웃더니 홀연히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나는 엄마한테 혼날 게 두려워서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까부터 우릴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 때문에 공터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날따라 조용한 골목길을 어기적대며 얘들아 노올자~! 하는 공연한 외침만 되풀이했다. 그리고는 어둑어둑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갔다. 그날 밤 엄마는 아빠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쟤 때문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나한테 맞을까봐 도망가서는...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내가 쟤를 못 따라잡았다니까요. 동네방네 사람들 다 구경나오고. 아이고, 챙피해서,원!”
그 후로 엄마가 나를 잡기 위해 공터를 뛰는 일은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엄마는 이제 방문을 닫아걸고 나를 잡도리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단련된 탓이었을까, 아니면 태어날 때 이미 싹수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나는 백 미터 달리기며 각종 구기대회의 반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발야구를 처음 배웠을 때는 눈앞에 굴러오는 공을 향해 헛발질만 했다. 그러나 순발력이 좋았던 덕에 공격하는 법은 금세 배웠다. 문제는 수비였다. 상대방이 (손이 아닌)발로 깐 공은 높았고 강력했다. 무서워서 도무지 공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내야수로 서 있던 어느 날, 나는 날아오는 공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공을 받으려고 앞으로 나갔다가 무서워서 눈을 감아버린 것이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눈을 감아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비극적 장면이 또 있을까. 나는 벌러덩 뒤로 자빠졌고 아이들의 탄식이 귀를 강타했다.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 얼굴이 터져버린 건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달려와서 처참한 내 꼴을 위로하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을 끝까지 봤어야지!” 묘하게도 그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끝까지...라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지만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긴, 원래 그런 거였다. 수많은 ‘당연’의 힘으로 살면서 ‘당연’하다는 듯 잊고 사는 것. 그리고 결국 ‘당연’한 죽음 앞에 무릎 꿇는 것. 삶이란 게 원래 ‘당연’히 그런 것이었다.
게임은 다시 시작됐다. 초등학교 발야구 게임에 대타(代打)는 없었다. 골이 좀 흔들리긴 했지만 나는 다시 경기에 참가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눈앞에 공이 날아왔다. 타자의 휘두르는 발에 제대로 맞은 공이었다. 뻥!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날아온 공이 눈앞에 떠 있었다. 이번에도 정통으로 맞으면 내 얼굴은 죽사발이 되고 말 것이었다. 나는 공을 노려봤다. 죽사발이 될 순 없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을 ‘끝까지’ 노려보니 양팔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멋지게 공을 받아냈다. 별사탕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게 나는 발야구 대표로서 입지를 굳혔고 사 번 타자가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이었다.
때는 6학년 1학기 말, 바로 그 디데이의 날이었다. 내가 혁이와 결별하게 된 날. 사실 일방적인 내 첫사랑이었으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지만, 그래도 그날은 참으로 어이없게 슬픈 날이었음이 틀림없다.
혁이는 고학년이 되면서 자기 반의 반장을 하는 것 같았다. 공부도 무척 잘했다고, 혁이 반에 심어둔 친구(실은 내 심복)가 전해줬다. 대충 어림짐작해 보건데, 혁이는 이젠 나와 급이 달라진 게 틀림없었다.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긴 했지만, 나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말괄량이 말썽꾸러기 어린이였다. 모범생 중에서도 ‘상’모범생인 혁이와는 레벨이 다른 게 확실했다. 그런데 역시 혁이 반에 심어둔 친구 말에 의하면 혁이는 운동 쪽은 젬병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학생들과 축구를 한다거나 몰려다니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달리기나 구기대회에 반대표로 출전할 리가 없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왜냐하면 혁이네 반과 우리 반의 발야구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자아이들끼리 다투는 경기였지만, 발야구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회였으므로 반 학생 전체가 관람하고 응원하도록 돼 있었다. 내가 잘하는 특기로 혁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진 못해도, 내 멋진 모습을 보여줄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양쪽 다 점수를 못 내고 있었지만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한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이뤄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 번 타자였으니 말이다. 타석에 섰을 때 나는 좀 초조했다. 경기는 끝나가고 있었고 내가 타석에 설 차례는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집중하자, 집중하자. 중얼대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나는 두 번이나 파울을 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을 때였다. 나는 눈앞에 굴러오던 공을 힘껏 발로 찼다.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뻥,소리와 함께 공은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와! 하는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일루를 밟고 이루를 지나 삼루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삼루타였다. ‘앗싸!’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해낸 것이었다. 이제 혁이는 나를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삼 년 동안의 공백과 무관심에 관해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누구라도 얼싸안고 싶었다. 이 감동의 순간을 함께 누릴 수만 있다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의 아이들이 나를 보며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도 경기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까르르 웃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대체 이게 뭔 요지경이지?’ 어리둥절한 나를 일깨워 준 것은, 웬 남학생 하나가 내게 던진 운동화 한 짝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운동화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건 내 운동화였다.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없었다. 운동화 한 짝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공을 차고 냅다 뛰었을 때, 공과 함께 신발 한 짝이 벗겨졌던 것이다. 공은 파울이 돼서 옆으로 빗겨 나갔지만, 신발 한 짝은 하늘로 붕 치솟아서 로켓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 로켓처럼 날아간 신발을 공으로 착각하고 무작정 뛰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일루를 찍고 이루를 또 찍어 삼루까지, 젠장!
신발이 벗겨진 쪽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양말뿐이었다. 양말 바닥은 더럽혀지고 찢어졌지만, 내 마음이 난도질당한 것만큼은 아니었다. 남학생들은 나를 놀리느라 신이 났다. “똥,똥똥!”을 외치며 무리 지어 ‘강시’ 흉내를 냈다. 그들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해야 일은, 벗겨진 신발을 챙겨 신고서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일이었다.
그날 일로 나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말았다. 삼 년이었다. 무려 삼 년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이 짝사랑했던 혁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으니, 이제 더는 그를 사랑해선 안 될 일이었다. 사랑은 그래야 하는 거였다. 나는 그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울면서 일기를 썼다.
<잘 가라, 혁아. 행운을 빌게. 굿 럭 투유.>
일기장은 눈물로 얼룩졌고 나는 오래도록 책상 위에 엎드려 울었다. 유년의 오랜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날 밤엔 별조차 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