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결혼 후, 맥주잔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왠지 코젤은 투박하고 두꺼운 잔에 마셔야 제맛이고 (시나몬을 툭툭 뿌려야 하니, 입구가 넓어야 한다), 파울라너는 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부이치잔에 마셔야 맛있다. 잔 하나에도 술맛이 달라진다니 신기하다. 집들이 할 때는 각자 취향에 맞는 술과 잔을 맞춰 서브했는데 모두 좋아해주었다. 이렇게 술 마시는 순간순간, 술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술잔 선물은 언제 받아도 좋다.
왜 잔 선물이 좋을까?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잔 선물은 '술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치트키다.
같은 술이라도 어떤 잔에 담아 마시느냐에 따라 경험의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피노누아를 리델전용잔에 마시면 좁은 입구가 향을 잘 머물게 해 섬세한 과일 향과 복합적인 풍미가 살아난다. 그래서 피노누아를 마실 때는 리델 잔에 담아 마시는 편이다. (비싸긴 하지만 그 값어치를 한다!)
우리 부부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면서도 술에 대해서만큼은 '맥시멀리스트'로 변신한다. 전용 주류장을 따로 두고 와인과 사케, 양주를 맨 위층에, 전용 잔은 그 아래층에 가득 채워 놓았다. 집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을 꼽으라면 에어팟도, 책상도 아닌, 이 주류장이 아닐까 싶다.
이따금씩 여행을 하다가도 각국의 술 전용 잔을 발견하면 눈이 반짝인다.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잔 선물은 두 눈 번쩍 뜨이는 선물이다. 잔은 단순 '용기'의 기능을 넘어 술의 매력과 가치를 배가해 준다는 점에서 정말 좋다.
고르는 팁
주종에 맞는 술잔을 고르려면 선물할 사람의 취향을 아는 게 중요하다. 주종마다 잔의 형태가 술의 풍미를 극대화해 줄 수 있다.
와인잔 : '레드 와인'은 공기와의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향과 풍미가 살아난다. 따라서 입구가 넓고 볼륨감 있는 잔으로 마시는 것이 좋다. '화이트 와인'은 산뜻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입구가 좁은 잔이 적합하다. '스파클링 와인'은 시각적으로 예뻐 가장 많이 선물하는 잔 종류 중 하나인데, 길고 좁은 플루트 잔이 기포가 오래 유지되는 데 도움을 준다.
맥주잔 : 홉향이 매력인 에일은 향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넓은 입구의 파인트 잔이 좋고, 가벼운 라거는 길고 날렵한 필스너 잔을 주로 이용한다. 풍미가 짙고 크리미 한 거품이 매력적인 스타우트는 입구가 넓은 나팔형 잔이나 두꺼운 머그잔이 좋다.
위스키잔 :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경우에는 두꺼운 바닥의 로크 글라스가 적합하다. 무게감이 있어 얼음이 녹는 속도를 줄여주며, 위스키의 진한 맛을 오래 유지한다. 풍부한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향이 잘 머무르는 글렌캐런 잔이 좋다. 이 잔은 둥근 바닥과 좁은 입구로 되어 있어 향이 잔 안에 잘 머무르게 한다.
사케잔 : 온사케에는 보온력이 좋은 도자기 잔이 잘 어울린다. 냉사케는 투명 유리잔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사케의 맑고 깨끗한 맛이 살아난다.
누구에게 선물하는 게 좋을까?
- 평소 술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취향에 맞는 잔 선물은 그들의 음주 경험을 한층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확실한 행복 요소다. 술 마실 때마다 선물해준 사람이 생각날 것 같다.
- 이사한 지인에게: 각 주종에 어울리는 잔은 술맛을 개선하고 홈바의 느낌도 줄 수 있다. 만약 선물하려는 지인의 주종을 모른다면 <광주요> 브랜드의 '소리잔'을 추천한다. 술을 물론 아이스크림을 담아 먹기도 좋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술을 같은 잔에 마시며, '그게 그거지' 했던 내가 이제 전용잔을 찾으며 술맛을 음미하는 음주생활을 하고 있다.
결국 음주 생활도 장비빨이었던 거다.
잔이 달라지니, 술이 한층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