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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tsbie Jul 27. 2018

'어린왕자' 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인 이유

#책리뷰 #미학 #관계의소중함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글을 쓰기로 다짐했던 약속을 지켜보고자 글을 또 끄적여본다.

오늘은 어린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린왕자의 별, B612 ref) felizpornada.blogspot.com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미학과 강의가 하나 있다. 김영 교수님의 '예술과 과학'이라는 이름의 강의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업 전에는 한 번쯤 들어봐야 하는 소위 '띵강'이다. 나 역시도 주변 동기들이나 선배들의 추천을 받고 이번 학기 교양으로 듣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첫 수업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미학이란 이렇게 가치론적인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학문인 것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학기가 지날수록, 내 주변의 삶이 상당부분 '미학적'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보면 Am I Wrong?이라는 의구심은 절로 들고, 바쁘게 몰아치는 일상 속 인스타그램의 친구들 모습을 보며 늪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미학강의를 통해 나의 불안정한 stance를 다잡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강의를 다 듣고 느꼈던 점은

"이 세상에 어린왕자를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었다.


과연 우리는 어린왕자를 얼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우선 어린왕자에 대해 읽기 전 우리는 작가 생택쥐페리의 삶을 조금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 생택쥐페리는 참전한 조종사였다. 당대 비행기술은 전위적인 첨단 기술이었으며, 생택쥐페리는 현대기술사회의 선구자로서 비행기를 조종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30대에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며칠동안 낙오하게 된다. 그 때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쓴 글이 바로 <어린왕자>이다. 


<어린왕자>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동화가 아니다. <어린왕자>는 손에 꼽히는 세계 명작 중 하나이지만, 그 책을 이루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단순하고 쉽게 쓰여져 있고,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1시간 내로 독파하며 뿌듯하게 책을 다 읽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소설 <어린왕자>는 어린왕자의 순수한 마음과 소설 자체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잘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동화지. 휴식 삼아 읽어보면 정말 좋은 책이야"

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보아뱀 속에 숨겨진 코끼리는 대중적으로 너무 많이 소비되어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영 교수님은 소설에 대한 우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부수는 미학적 해석을 가르쳐주셨다. 어린왕자 소설의 핵심은 '관계맺음의 미학'이다. 

관계맺음이라고? 친구가 되는 것? 인맥이 성공의 저울처럼 평가되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짐처럼 느껴지는 현 사회에서 관계맺음, 그 자체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진정한 관계맺음이란 타인이 내 삶으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왕자가 지구에 있는 여우를 길들인 순간, 여우에게 있어 평범한 밀밭은 어린왕자의 머리색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장소가 되어버린다. 조종사는 어린왕자가 지구를 떠나고 나서도 하늘 위의 별을 보며 어린왕자를 떠올리곤 한다. 순수하게 아무 목적없이,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를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기능적 요구로 점철되어 있다. 모든 것이 유용한지 아닌지로 평가되곤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알게 모르게 이해타산적으로 많은 것을 '따지게' 된다. 어린왕자가 조종사를 만나서 제일 먼저 한 말은 '양 좀 그려주세요'라는 말이다.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는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린왕자의 가장 유명한 보아뱀 이야기가 아니라, 조종사가 어린왕자에게 그려준 양 그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막 한 가운데에 낙오된 조종사가,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어린 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너무나도 충격적이게도 아이가 건넨 말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구였다. 사막에 낙오된 사람이라면 '물 좀 주세요''먹을 것 좀 주세요'라며 기능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어린왕자는 그림을 요구한다. 그림이 사막에서 갖는 유용성은 0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왕자>에서는 다르다. 조종사는 어린왕자의 요구를 수락하고 양 그림을 그려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다른 수단성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림은 오롯이 쓸데 없는 요구이기에 조종사가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목적은 '어린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특이'하게도 조종사가 그려준 양 그림은 상자였다.

 이 그림을 보고 어린왕자는 뛸듯이 기뻐한다. 바로 자기가 원했던 그림이라며.. 어린왕자는 상자 속에 있는 양을 꿰뚫어본걸까? 아니다. 사실 어린왕자가 요구한 건 양의 image가 아니었다. 어린왕자는 양의 실재를 원했던 것이고, 조종사는 어린왕자의 요구에 딱 맞는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어린왕자는 image와 실재를 구분한 조종사가 일반 어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조종사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한 것이다. 


우리는 image의 제공으로 타인을 만족시킬 수 없다.

 나는 타인의 눈을 잘 의식하는 편이다. 외식을 가더라도 부모님께 조금 비싼 레스토랑을 가자고 졸라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얘기하거나, 인스타를 처음 시작한 이유도 내가 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을 남들에게 자랑스레 꺼내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고, 내 계정의 피드가 '인스타 감성'으로 가득 찰 수록 인스타그램에 점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약간의 이벤트라도 있으면 "인스타에 올려야지!"라고 먼저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줄의 글과 잘 찍은 사진 몇장으로 남들에게 내가 제공하는 건 단지 피상적인 image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 하트를 눌러주는 관계의 맺음이 진정한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조금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좋은 곳을 가서 사진을 찍고, 더 맛있는 것을 먹기위해 식당을 가고 내 자신을 꾸미는 데에 지치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에 깊게 개입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일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무 수단성 개입없이 한 대상만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쏟는 것을 이제 연습해보고자 한다. 겉으로 비춰지는 image를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reality를 가지고 상대를 대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잔뜩 들어가 있던 긴장감과 힘이 조금 빠지는 것 같다. 


 어린왕자는 다른 별을 방문하면서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니"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어른들은 어린왕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만을 하곤 했다. '별을 소유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니까'. 평범한 어른들과는 달리 조종사는 어린왕자의 그림 test에 통과했고 결국 그는 어린왕자를 통해 얼마나 진정으로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소중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그가 그려준 양 그림 옆에 양에 목에 매어줄 가죽끈을 그리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자책할 정도였을까!


 B612는 상상의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별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별을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느날 '어린왕자'가 내 별로 찾아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아마 어쩌면 과거에 질문을 던졌을수도. 그 때 나는 어린왕자를 알아보고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듯 하다 :)

 어린왕자와 같이 관계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이며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생택쥐페리는 독자들에게도 test를 던진다.  책의 에필로그를 유심히 본 적 있는가?


 어린왕자가 사라진 사막의 바로 그 장소이다. 이 장소를 잘 기억하고 어린왕자가 나타나면 자신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조종사의 당부로 책은 끝난다.


과연 우리는 사막 속 이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적으로 충분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Love Myself 코멘트>

 미학과 강의를 듣고 나서 마음속에 어린왕자를 품게 되었고, 덕분에 많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포기하고 힘빼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를 들어내는 일이란 언제나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뜻하지 않은 기회로 찾아오는 것 같다. 이번 학기 초반에는 실망스러웠던 미학과 수업을 통해 나를 들어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내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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